서양에서도 여우는 꾀가 많은 동물로 그려집니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포도’에서 여우는 포도를 따먹으려 수없이 점프하지만 결국 못따먹자 “저건 신포도 일꺼야”라고 자기 위로를 합니다. 라퐁텐 우화의 ‘여우와 황새’에서 여우는 집에 찾아 온 황새에게 접시에 담긴 스프를 주었다가, 황새가 주둥이가 긴 병에 담긴 음식을 주어서 복수를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여우는 ‘전설의 고향’ 등의 TV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부정적인 동물로 그려져 왔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토종 여우는 1급 멸종 위기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실물로 여우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한반도 전역에 살고 있던 그 많던 여우는 왜 사라졌을까요?
경북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에 있는 ‘소백산 여우생태관찰원’에서 처음으로 여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1월 5일 개관한 여우생태관찰원은 우리나라 토종인 ‘붉은여우’를 복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시설인데요. ‘붉은 여우’의 줄임말은 ‘불여우’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로는 ‘불여시’라고 하죠. ‘불여시같은 XX’라고 할 때 바로 그 붉은여우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만난 여우는 착하고 귀여운 모습이었습니다. 불쌍하기도 했구요. 여우생태관찰원에 있는 여우는 주로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거나, 로드킬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든 여우들이었는데요. 여우생태관찰원에서는 이러한 여우를 보호하고 회복시켜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몸집은 개, 행동은 고양이를 닮은 여우
‘여우생태관찰원’에 들어가면 먼저 죽은 여우를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 박제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우는 개과 동물입니다. 하드웨어 몸집은 중간 크기의 개를 닮았습니다.
여우의 생김새를 보면 우선 주둥이가 개보다는 좀더 길고 뾰족합니다. 꼬리도 일반적인 개와 달리 몸통만큼 길고 풍성한 털이 있습니다. 붉은여우라고 하지만 털색깔은 완전 붉은색은 아닙니다. 황토흙을 섞은 것처럼 황갈색 느낌이네요. 그런데 자연으로 나갔을 때 햇빛이 비치면 붉은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붉은여우가 됐다고 합니다.
여우는 자연에서 단독생활, 단독사냥을 하기 때문에 경쟁종인 삵이나 오소리, 멧돼지에게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귀여운 얼굴의 족제비과 동물인 ‘담비’는 최소한 2~3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면서 사냥을 하기 때문에 호랑이 없는 한반도에서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우는 담비에게도 밀리고, 무리지어 다니는 들개한테도 싸우면 지기 때문에 피해다녀야 하죠.
불여우는 왜 사라졌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토종 붉은여우는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도 여우가 많고, 중국에도 여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사라졌습니다. 왜일까요?
한반도에서 여우가 멸종된 이유에 대해서는 환경오염과 서식지 파괴 등이 1차 원인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1960년대 전국적으로 벌였던 ‘쥐잡기 운동’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설치류 동물입니다. 고양이의 행동양식을 가진 여우는 그 중에서도 쥐를 많이 잡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쥐잡기 운동으로 뿌린 쥐약이 여우까지 잡아버렸습니다. 쥐약을 먹은 쥐를 여우가 먹고 2차 중독으로 대량으로 죽게 된 것이죠.
소백산 여우생태관찰원에 전시돼 있는 여우목도리 또한 ‘여우 목도리’의 인기도 여우의 멸종의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여우목도리는 여우 한마리의 털가죽을 통째로 벗겨서 만드는데요. 몸통부터 꼬리까지 그대로 있고, 주둥이로 꼬리털을 물고 있는 형태로 목에 둘르고 다니곤 했습니다. 30여년 전에도 여우목도리는 50만원 이상을 호가할 정도로 명품대접을 받았죠. 웬만한 직장인의 한달치 월급에 해당됐으니, 부유층 사모님을 상징하는 아이템이었죠. 한반도의 여우들은 수없이 포획돼 털가죽이 벗겨져 목도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우를 마구잡이로 사냥하고, 덫으로 잡아 털을 벗겨 죽였던 데에는 여우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백산 여우생태관찰원의 해설사는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여우는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데요. 지금은 “여우가 사라져 생태계가 건강하지 못하게 됐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농민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고라니와 멧돼지입니다. 농작물에 큰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죠. 고라니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 종인데, 전세계 고라니의 90%가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0% 정도가 중국에 있죠. 그런데 고라니가 우리나라에 왜 많이 있을까요?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우가 좋아하는 먹이 중에는 새끼 고라니와 새끼 멧돼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우가 야생에서 고라니와 멧돼지의 숫자를 적절히 조절해왔는데, 여우가 멸종되자 그 역할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농가에서는 지금도 고라니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올가미 덫을 놓는데, 그 덫에 복원사업을 하고 있는 여우가 또 다시 잡혀 죽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가주변 야산은 사람이 죽으면 묘자리로도 많이 이용되지요. 원래 여우가 먼저 살고 있던 공간에 무덤이 생긴 것인데요. 그런데 사람들은 부모나 조상님이 묻힌 곳에 여우가 나타나면 기분 나쁘게 봅니다. 폭우에 산소가 무너져도 여우가 굴을 팠다고 생각하죠. 그렇게 해서 여우에 대한 오해가 쌓인 것입니다. 또한 여우는 지혜롭다고 알려졌는데 실제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반달가슴곰의 아이큐가 80정도, 여우는 27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초창기에는 한반도 토종 붉은여우를 번식시켜 숫자를 늘리는 사업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이후 건강한 여우를 골라 야생 적응훈련을 시키면서 자연으로 돌려보냈는데요. 목에는 위치추적 발신기를 달아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100마리 이상을 방사했는데요. 대부분 소백산권(영주, 예천 등)에 살고 있고, 강원도 원주, 충남 부여, 부산 달맞이 고개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복원팀 직원들은 발신기의 전파를 잡는 안테나같은 장비를 갖고 다니면서 내보낸 모든 개체의 여우를 관리하고 있는데요. 이 안테나는 평지기준으로 10km 이내의 여우의 위치추적 발신음을 탐지해낸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다니는 여우가 보내는 ‘뚜뚜뚜’ 발신음은 규칙적으로 들리는데요. 멀리 있으면 작게, 가까이에 있으면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완전히 다른 비정상적인 수신음이 들려올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직원들이 출동해 끝까지 위치를 추적해 찾아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한다고 합니다. 가보면 대부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거나,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덫에 걸려 다리 잘린 상처를 가진 여우소백산 여우생태원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우들은 대부분 이렇게 야생으로 보냈다가 다치거나 병들어서 다시 들어온 친구들입니다. 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거나, 꼬리가 잘리거나, 야생성이 떨어져서 다시 데려온 여우들을 치료하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시설입니다.
이 곳에 있는 여우들은 야트막한 언덕에 굴처럼 생긴 시설물과 원두막 등을 오가며 야생여우가 아닌 시설 여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어린 학생들은 다리가 잘린 여우들을 보고 “우리가 잘 돌봐줘야 겠다. 여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하겠다”고 소감을 말한다고 합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여우의 수명은 약 3~6년이라고 합니다. 생태적으로도 약하고, 단독생활, 단독사냥하며 살아가는 습성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죠. 반면 시설에서 관리를 잘 받고 사는 여우는 15년까지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우는 개과 동물이나 개의 전염병도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우를 방사하기 전에는 개들이 맞는 예방주사도 놔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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