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 원장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경쾌한 자진모리장단과 강강수월래처럼 중간중간 후렴이 들어가는 형식이 진관 아리랑의 특징”이라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생명을 바친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에서 합창곡 ‘진관 아리랑’(김연갑 작사·박범훈 작곡)이 초연됐다. 진관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체인 ‘일심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 불교계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던 백초월(白初月) 스님(1878∼1944)이 머물렀던 곳이다.
2009년 사찰 내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백초월 스님이 숨긴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 20여 점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진관 아리랑은 이런 진관사의 역사와 백초월 스님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을 기린 국악 합창곡이다. 노래를 작곡한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동국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을 10일 진관사에서 만났다.
―한스럽고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나고 흥겹습니다.
“우리 아리랑의 진정한 매력은, 한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요. 그래서 느리면 한이 서리고 슬프고 애간장을 녹이지만, 또 장단을 바꿔서 흥겹게 부르면 그렇게 신나는 가락이 없지요. 느리게 만들어서 슬픔과 한이 배어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금 시대에 굳이 아리랑을 구슬프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술을 많이 먹고 거북할 때 토하면 속이 편해지듯, 경쾌한 아리랑을 통해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토해내는 것이죠. 아직 충분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좀 기쁘게, 흥겹게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찰 이름이 붙은 첫 아리랑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원래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2009년에 당시 주지인 계호 스님이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부탁했는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만들지 못했어요. 그게 늘 마음의 짐이었죠. 마침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데다, 마침 진관사에서 백초월예술제가 처음으로 열려 쓰게 됐지요.”
―백초월 스님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분입니다.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 스님이 체포되자 뒤를 이어 ‘승려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의용승군제를 추진한 독립투사시죠. 1944년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셨지요. 진관사 태극기는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진관사에 머물던 스님이 칠성각 벽 속에 숨겨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극기에 독립신문 등 사료 20점이 싸인 채였는데, 90년 가까이 아무도 모르게 보존되다가 기적처럼 발견된 것이지요.” ―진관사 태극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요.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고 해요. 더욱이 왼쪽 윗부분 끝자락은 불에 타 손상되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으로 미뤄 만세운동 등 실제 독립운동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이런 의미를 알고 진관 아리랑을 부르면 더 뜻깊은 광복 80주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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