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문득 시선이 닿은 사람을 찍는다. 그러나 인화한 사진 속에는 자동차와 빌딩, 개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담겨 있다. 프레임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사진가가 선택한 결과다. 사진을 감상할 때 가만히 앞에 서서 5분 동안 바라보라. 의미를 담으려 애쓰지 말고, 대상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라.”
사진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를 펼쳐봤을 것이다. 기자 역시 보도사진을 벗어나 일상에서 카메라를 들 때면 그의 글귀를 떠올리며 사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퍼키스는 1954년 학업을 중단하고 보스턴을 떠나 미 공군에 입대했다. 그는 공군에서 B-36 폭격기 꼬리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에 눈을 떴다. 그는 제대 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 입학해 마이너 화이트, 도로시어 랭, 안셀 아담스 등에게 사진을 배우며 예술적 기틀을 다졌다. 이후 뉴욕으로 옮겨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40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을 지냈고, 뉴욕대와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 쿠퍼 유니언에서도 강단에 섰다.
퍼키스는 2007년 망막 폐쇄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고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기 전까지 사진 촬영과 암실 인화 작업을 이어갔다.
안목출판사 제공
안목출판사 제공
안목출판사 제공 그의 마지막 사진 작업이자 사진집으로 출간된 『노탄(NŌTAN)』은 올해 6월 미국 로체스터공과대(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 RIT) 케리 그래픽 아트 컬렉션(Cary Graphic Arts Collection)에 희귀본으로 영구 소장됐다. 이 사진집은 2019년부터 16개월간 진행한 심층 인터뷰와 함께 엮여 2024년 한국의 안목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케리 그래픽 아트 컬렉션은 전 세계 타이포그래피, 인쇄, 시각예술서의 역사 보존을 선도하는 기관이다.
퍼키스의 오랜 제자이자 안목출판사 대표인 박태희 사진가는 “사진은 멈췄지만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박 대표는 퍼키스의 어린 시절과 군 복무, 사진 교육과 사진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보내고 매주 전화 통화로 그의 답변을 녹음했다. 아내이자 예술가인 시릴라 모젠터가 이를 소리 내어 읽으며 책에 실릴 내용을 편집했다. 긴 협업 끝에 『노탄』이 완성됐다.
‘노탄’은 음양, 밝음과 어둠의 균형을 중시한 일본의 디자인 개념에서 이름을 땄다. 퍼키스에게 이 개념은 재현과 추상, ‘무엇’을 담느냐와 ‘어떻게’ 표현하느냐 사이의 긴장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세상을 위계가 아닌 관계와 상호작용으로 바라봤고, 사진뿐 아니라 삶에서도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