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6세기 이탈리아 우르비노 공국 공작의 아들은 베네치아 최고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작업실을 방문합니다.
티치아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기 때문입니다. 초상화를 위해 모델을 서고 있던 공작 아들, 작업실에 놓인 그림 한 점이 그의 눈에 들어옵니다.
모델을 마치고 작업실을 떠난 그는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그 ‘여자 누드(donna nuda)’를 꼭 갖고 싶은데, 티치아노가 다른 사람한테 팔아 버리면 어떡하죠?”
노심초사하던 공작 아들은 수개월 뒤 공작의 지위를 물려받고 마침내 그 그림을 손에 넣게 됩니다.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대표작이자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직선 속 부드러움의 극치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 공작 ‘귀도발도 2세 델라 로베레’의 초상화. 예일대 미술관 소장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우르비노의 공작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고 반한 걸까요. 우선 진주 귀걸이를 하고 곱슬곱슬한 금발을 풀어 헤친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여인의 외모가 예쁘다고 모든 그림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건 아니죠. 티치아노는 그림 속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여인의 관능적인 모습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흰 시트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는 여인의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입니다.
이 곡선에 빼앗겼던 시선을 전체 그림의 구도로 옮겨 보면, 그림의 다른 곳은 똑바로 그은 직선이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고대 신화 속 ‘비너스’를 표현했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그 덕분에 이 그림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그 단서 중 하나는 여인이 들고 있는 붉은 꽃, 장미입니다.
장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뜻하는 주요 상징입니다. 열정적인 사랑, 쾌락, 육체미를 뜻하죠. 또 창가에 놓여 있는 머틀(myrtle) 화분 역시 고대부터 비너스와 연결되는 식물로 불멸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또 다른 단서는 포즈입니다. 그림 속 여인은 왼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자주 묘사된 자세로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라고 부릅니다.
로마 시대 비너스 조각, ‘비너스 푸디카’ 도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비너스 푸디카는 ‘수줍은 비너스’라는 의미인데, 여자가 자신의 몸을 가리는 모습을 표현해서 겸손, 순결, 부끄러움의 미덕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여인은 수줍기는커녕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쏟아질 듯 과감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수줍은 비너스’에서 모티프를 따왔지만 ‘수줍지 않은 비너스’인 것입니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1534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