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두얼굴…‘동물농장’ 기획자는 원래 아내였다 [책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8일 1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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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632쪽·2만4000원·생각의힘

입양한 아들 리처드와 함께 한 아일린(왼쪽). 오웰 아카이브 제공.
입양한 아들 리처드와 함께 한 아일린(왼쪽). 오웰 아카이브 제공.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로 불린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조수이자 제자, 모델로 로댕의 공방에 들어간 그는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대표적인 로댕의 작품에 참여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펼쳤다.

하지만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로댕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클로델의 작품이 출품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1984년 렌마리 파리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를 쓰면서였다.

이 책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인 아일린 오쇼네시(1905~1945)에 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클로델과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다.

1949년 출판된 ‘1984’는 오웰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화해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책이다. 하지만 ‘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를 통해 텔레파시로 세뇌된 미래 세상을 오웰보다 먼저 그린 사람은 오쇼네시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도 참여했고,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오웰과 동료들을 구출했던 여전사였다.

저자는 심지어 세계 문학사에서 풍자 우화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우화로 기획하고 함께 편집한 사람도 아일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보부 검열과에서 뉴스를 검열하고 삭제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돼지’였다고 한다. 오웰이 ‘1984’에서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라고 쓴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저자는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7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 ‘에릭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창작을 뒷받침해 준 존재가 오쇼네시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일린을 오웰은 그저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

읽다 보면 ‘1984’에서 받았던 감동은 사라지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농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욕구만을 위해 여성들을 전전한 ‘지질한’ 남자가 보여 씁쓸하다. ‘1984’처럼 굳이 어두운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신이 살면서 부인에게 했던 행동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걸 오웰은 몰랐을까. 왠지 ‘동물농장’의 등장인물(혹은 동물) 중에 오웰도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
#조지 오웰#아일린 오쇼네시#1984#동물농장#카미유 클로델#로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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