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철학자의 ‘본캐’는 따로 있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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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진짜 직업/나심 엘 카블리 지음·이나래 옮김/272쪽·1만8000원·현암사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1712∼1778)는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762년에 집필한 ‘사회계약론’은 근대 정치철학의 핵심 고전으로,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 개념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가 생계를 위해 악보 필사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루소는 1770년부터 1777년까지 총 1만1200쪽에 이르는 악보를 손으로 베껴 썼다. 오페라 발레 ‘마을의 점술가’를 비롯한 여러 음악 작품을 손수 작곡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철학자의 이미지는 ‘세속과 단절된 채 사유에 몰두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러나 루소의 사례만 보더라도 철학자가 반드시 그런 모습인 건 아니다. 철학 교사이자 박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름난 철학자 40여 명의 숨겨진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조명한다. 여기엔 변호사나 수학자처럼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직업은 물론이고 프로 사이클 선수처럼 강인한 신체를 필요로 하는 이색 직업들도 등장한다. 도덕적으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력도 있어 흥미롭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1952∼2020)는 20대 시절 은행을 털었다가 5년간 복역했고, 감옥에 있는 동안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후 인간과 기술의 본질적 관계를 탐구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유명한 음악 및 기술 연구소 이르캄(IRCAM)의 소장을 지냈다.

철학자에 대한 통념을 허물고, 개별 사상가들의 삶과 사유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사례는 풍부하고 문체는 유쾌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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