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원더우먼’은 여성 영웅 서사 아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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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게일 캐리거 지음·송경아 옮김/368쪽·2만 원·원더박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대지, 농업, 결혼, 계절, 풍요의 여신인 ‘데메테르’. 하데스가 나타나 그의 딸을 지하 세계로 끌고 내려간다. 데메테르는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딸이 절대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끌려간 것이라고 확신한다.

데메테르는 자신의 딸이 어디로 갔는지 올림포스 다른 신들에게 묻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에 데메테르는 자신의 머리장식(왕관)을 뜯어내고 직접 딸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가족적 유대’를 빼앗긴 상황에서 올림포스산을 미련 없이 떠나는 데메테르는 가장 안전했던 권좌에서 험지로 기꺼이 여정을 택한다.

신간의 저자는 이런 데메테르의 서사를 “여성 영웅의 여정에 나타나는 상징적 장면”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여성 영웅의 서사는 남성 영웅의 서사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게임, 소설, 광고 등에 등장하는 오늘날 수많은 이야기 구조는 대개 남성 영웅의 익숙한 공식을 따른다. 영웅이 홀로 고난을 극복하고 뜻밖의 조력자를 만나 극적인 성취를 이뤄 금의환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대체로 보조자거나, 심지어 보상의 대상일 뿐이었다. 신간은 이 공식을 살짝 비튼다. 저자는 “여성 영웅 서사만이 가진 고유의 여정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서사는 고립이 아니라 연결을 지향하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특징이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영웅의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남성 영웅의 서사, 여성 영웅의 서사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사의 전개 방식이나 영웅의 행태에 따라 새롭게 서사의 성별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타인과의 협력, 연대를 중시하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주인공의 성별과 상관없이 여성적 영웅 서사로 분류한다. 반면 홀로 적들을 각개격파하며 돌진하는 ‘원더우먼’은 남성적 영웅 서사로 본다.

장르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신간에서 “여성은 언제나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살아남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간 남성적 영웅 서사에 길들여진 우리가 어쩌면 모든 이야기를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바라봤던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여성 영웅 서사#여성 영웅의 여정#원더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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