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저질 체력’ 소설가의 탁구 예찬론

  • 동아일보

◇탁구를 읽자/박현욱 지음/248쪽·1만6000원·난다

마흔이 넘어 스스로 잘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늦은 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깨달았단다. “나 좀 생겼는데?”

학창 시절부터 평생 외모로 빛날 일이 없었다는 그. 뒤늦게 ‘늦깎이 미남’이란 각성(?)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뭘까. 탁구 때문이다. 땀 흘리며 즐겁게 운동을 하고 난 뒤의 얼굴이 꽤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 에세이는 제목만 봐도 탁구 예찬론.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동정 없는 세상’ 등을 쓴 박현욱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실은 10년 전까지 작가의 건강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한번 감기에 걸리면 보름을 앓았다.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겠다 싶었을 때,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탁구 치는 걸 봤다. 첫인상은 좀 없어 보였던 한 출연자가 집중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있어 보였다’. 있어 보이는 것에 약한 그에게 딱이었다.

그렇게 입문한 탁구에 작가는 깊이 빠졌다. 팬데믹 시기 탁구장이 닫았을 땐 가상현실(VR) 기기를 머리에 쓰고 채를 휘둘렀다. 땀 흘리며 작고 하얀 공을 쫓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활력이란 게 오래가는 게 아니어서 다음 날이면 또 어두운 생각에 잠식됐지만 저녁엔 다시 공을 쫓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심지어 우승도 했다. 학창 시절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젠 대한탁구협회장 명의의 상장도 있다. 학교 다니며 글짓기 상장 한번 받아보지 못한 그가 소설가가 된 것처럼,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내게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재능이 이것저것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며 “혹 사랑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로 사유를 이어간다. “스스로 없다고 생각한 재능이지만, 제대로 배우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익혔다면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다른 것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을까.”

책은 묘사가 간결해 술술 읽힌다. 문인들과 탁구 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 글을 읽고 나면, 주변에 어디 탁구장이 없을까 찾아보게 된다. 뭣보다 잘생김을 얻을 수 있다니. 퍽 유혹적이지 아니한가.

#탁구#박현욱#산문집#운동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