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지붕의 굴곡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된 세계 첫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복판, 세계 최초의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가 지난달 14일 문을 열었다. 특별한 공간의 탄생에는 늘 그렇듯 누군가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다. 세계 첫 마이바흐 브랜드센터 건립은 3년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사람은 공간 디자인 전문가 박재인 아미글로비즈 대표다. 지난달 25일 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정체성과 한국의 미감을 한 공간에 어떻게 녹여냈을까.
●한옥과 마이바흐, 그 사이에서
브랜드센터는 지난달 개관에서 외벽에 보이는 유려한 파도 모양 덕분에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한옥 지붕에서 볼 수 있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만들어 내는 곡선을 재해석한 외관이다. ‘기와 파도’의 파형의 폭과 높이에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한옥의 미를 재현했다.
독일 마이바흐에서 만든 디자인 초안은 견고함으로 무장된 박스 형태였다. 독일 건축사와의 첫 미팅에서 박 대표는 한옥 기와가 만들어 내는 부드러운 굴곡과 처마가 만들어 내는 버선코 같은 한옥의 아름다운 선들을 가미할 것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단단한 외관에 한옥이 만들어 내는 부드러움이 더해졌고, 마이바흐의 정체성과 한국의 미가 잘 어우러졌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 프로젝트를 총괄한 박재인 아미글로비즈 대표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독립적인, 아울러 편안함을 강조한 공간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브랜드센터는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에 있는 전시공간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2층과 3층은 구매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용 공간에는 인터랙티브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이 자신만의 조합으로 차량디자인을 경험하고 상담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상담을 받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해도 되도록 디자인됐다. 박 대표는 “마이바흐다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고급스러우면서도 독립적인, 그리고 편안함을 강조한 공간을 구현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의 나선 계단에서 본 1층 공간.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디자이너의 집념
마이바흐가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정체성과 한국의 특성을 살려야 하는 프로젝트는 결코 쉽지 않았다. 브랜드의 엄격한 기준, 기술 소재의 차이, 예산의 제한까지 풀어야 할 숙제는 차고 넘쳤다. 박 대표는 예산과 품질 둘 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했다. 외장재의 패턴을 규격화했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대체제를 찾았고, 미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공비가 적게 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묘한 소재의 차이가 크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외장 소재 선정에도 빈틈을 보일 수 없었다. 박 대표는 “대체로 밝은 분위기의 공간이지만 3층의 상담 공간은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는 우드패널로 마무리해 도심 속의 휴식처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우드패널은 나무다운 자연스러운 비정형 패턴이면서도 적절하게 정형화돼 있어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했고, 색감도 금속성 재질인 로즈골드와 어울려야 했다. 수도 없이 샘플을 만들었고, 결국에는 의도한 분위기를 가장 잘 연출하는 유럽산 패널을 찾아 적용했다. 박 대표는 “미묘하지만 살짝 다른 느낌이 나면 결국 공간 전체가 하나의 컨셉과 톤앤매너로 읽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센터 건립의 전 과정을 책임졌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본사와 한국법인, 국내 딜러, 협력 시공사 등 다양한 팀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예산과 일정, 디자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박 대표는 “디자인의 완성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해외 본사와 국내 사정, 자재 수급, 예산 등 실무의 모든 난제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1개 공정을 위해 수개월씩 반복 협상을 하는 생활을 3년이나 했다. 박 대표는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게 일했다”며 “책정된 예산으로는 완공이 힘들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각 분야 협력사들과 함께 최적의 대안을 끝까지 찾아내 예산 범위 내에서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그는 이어 “좋은 공간은 디자인을 존중해주는 클라이언트와 장인정신을 가진 시공사가 함께 만들어 내는 협주곡이라 생각한다”며 “완공됐을 때 본사와 국내법인, 딜러 등 고객사 측 임원들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내줘서 모두들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 정면 외관.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박 대표는 미시간주립대와 워싱턴주립대에서 인테리어디자인 전공으로 모두 수석 졸업했다. 미국 뉴욕 세계적 설계사(SOM)를 비롯해 CJ와 한화, 삼성물산 등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삼성에버랜드 디자인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서 에버랜드 로스트밸리, 판다월드 등 국내 대표 어트랙션의 성공을 견인했다. 이후 창립한 아미글로비즈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전시장과 서비스센터 등 90여 곳의 설계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신한라이프케어가 추진하는 실버타운과 요양시설의 인테리어 설계를 맡아 시니어공간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30여 년을 공간 디자인에 전념해 온 그는 “공간 디자이너는 창작예술가가 아니라 사용자 관점의 해법 제공자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공간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브랜드의 스토리와 철학, 고객의 기대와 감성이 자연스럽게 체험되는 무대라는 의미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센터 3층에는 전문 바리스타가 상주하면서 상담고객에게 취향에 맞춘 커피와 차를 내놓는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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