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빤 너를 보면 에너지 풀 충전이야!”
반복된 출근과 퇴근, 그리고 육아. 부모들은 빠듯한 일상에 지치다 보면 가끔씩 놓치는 게 있다. 바로 가족 간의 사랑이다. 누가 그걸 모르냐 싶지만, 삶은 맘처럼 흘러가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서울 이화여대 ECC 영산극장에서 개막한 가족 뮤지컬 ‘건전지 아빠’는 무심히 흘려보냈던,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승배 강인숙 작가의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이 원작인 이 작품은 ‘장수탕 선녀님’과 ‘알사탕’ 등 가족극을 연출해온 홍승희 연출과, 이소은 정준일 등 여러 아티스트의 공연을 제작해 온 오선화 프로듀서가 함께 만들었다. 6일 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공연”이라고 입을 모았다.
‘건전지 아빠’가 뮤지컬로 무대로 옮겨진 계기는 오 프로듀서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오 프로듀서는 “2021년 일을 쉬며 육아를 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고 큰 울림을 받았다”며 “우울감이 클 때였는데 ‘공연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홍 연출 역시 “이야기가 단단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건전지 아빠’가 그랬다”며 “제안을 받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무대의 주인공은 여섯 살 아이 동구네 가족과 건전지 가족들이다. 해맑게 놀고 싶어 하는 동구,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모습은 평범하면서도 친근하다. 힘세고 든든한 아빠인 더블에이(AA) 건전지는 집안의 도어록과 장난감, 리모컨을 움직이며 가족의 일상을 묵묵히 지탱한다. 아이인 트리플에이(AAA)는 방전된 아빠에게 다시 힘을 충전해 주는 존재다.
작품에는 현실 육아의 디테일이 곳곳에 녹아 있다. 엄마 아빠가 ‘육퇴’ 후 치킨을 시키고 ‘나는 솔로’를 보는 장면, 아침에 아이에게 양치는 시키지만 세수는 깜빡하며 “어차피 아무도 몰라”라며 넘어가는 장면은 부모 관객에게 웃음을 안긴다.
반면 동구가 일에 바쁜 아빠를 그리워하는 장면처럼 코끝이 찡해지는 대목도 적지 않다. 오 프로듀서는 “공감할 수 있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제작진이 육아 서적들을 읽고, 대본 회의도 10번가량 했다”고 설명했다.
관객 참여형 연출도 눈길을 끈다. 아이들은 모기를 잡기 위해 객석에서 손뼉을 치거나, 입구에서 나눠준 손전등을 켜 동구와 아빠를 도우면서 극에 몰입한다. 공연 도중 배우들이 유도해 부모와 자녀가 포옹을 나누고,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애정을 충전하는 순간처럼 다가온다. 홍 연출은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보다 내가 ‘살아 있고, 같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웃고 즐기는 장면 뒤에는 따뜻한 메시지도 담겼다. 홍 연출은 “육아가 힘들기도 하지만 사랑을 충전하면서 힘듦이 사라지기도 한다”며 “극을 보고 관객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얻어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가족 뮤지컬 중에서 이렇게 우리의 ‘진짜 일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없다고 자신합니다. 가족이 함께 오셔서 풍요로움을 얻어 가시면 좋겠어요.”(오 프로듀서)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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