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화 물감을 사용한다면, 내 작품이 속하는 역사란 ‘유화 그림의 역사’라고 생각했죠.
물론 그 ‘유화 그림의 역사’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 회화 중심의) 미술사죠.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은 (흑인이자 미용사의 아들이라는) 제 출신과 성장 스토리에 집착했거든요.
그러니 (파마지라는) 재료의 기원을 생각하며 이걸 전략적으로 쓸 수 있겠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역사에 대해 대화를 여는 전략으로 재료를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파마지를 쓰게 된 거예요.”
— 파마지에 담긴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란 어떤 걸까요?
간단해요. 파마지는 파마를 할 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용실에서 쓰는 종이죠. 한국 사람들도 파마를 많이 하니까 그 재료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죠.
저는 흑인 여성들이 자주 드나드는 공간인 미용실에서 파마지를 사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니 내가 속한 사회의 역사와 관련 있는 재료죠.
동시에 저는 미술사, 특히 추상 미술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유럽의 추상과 1950년대 미국 추상이 그것인데. 저에게 그런 추상과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의 자체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술가의 고요한 작업실에서 만들어지는 추상화가 세상과는 동떨어진 ‘텅 빈 그릇’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모더니즘의 개념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죠. 전혀요.
— 그러면 파마지를 보고 ‘아, 내가 이걸 재료로 쓸 수 있겠다’했던 정확한 순간은 기억이 나나요?
네, 작업실에 있을 때였어요.
교수님과 크리틱을 하고 있었고, 제가 플라스틱 위에 반투명한 흰색 파마지를 붙였어요.
교수님이 들어와서 봤고,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이게 회화라고 생각해요.”
교수님이 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하고 걸어 나갔어요. 그 순간 생각했죠.
“음, 이거 흥미로운데?”
그때부터 파마지를 재료로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다녔던 학교(CalArts)는 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론을 중시하는 곳이었어요. 유럽 이론이 정점에 이르렀고, 자크 데리다는 신이었으며 할 포스터, 호미 바바, 로잘린드 크라우스… 그러니까 정체성과 이론의 시대였죠. 그런 가운데 제 작업을 보고 어떤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너 이거 계속하면, 네 커리어는 끝날 거야.”
— 왜 커리어가 끝난다고 했어요?
너무 ‘재료적’(material)이었고, ‘모더니즘 회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뉴욕 화파를 직접 건드렸기 때문이에요.
모더니즘 회화는 잭슨 폴록 같은 커다란 백인 남자들이 그린 추상화이고, 그건 헤테로섹슈얼, 나쁜 남자, 카우보이들의 그림이었어요.
파마지를 재료로 한 회화 작품. 믿음의 배신(The Betrayal of a Belief),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그러니까 뱀파이어가 될지언정 남들이 다 죽었다는 회화로 승부를 걸겠다. 다만 유럽 미술사의 상징인 유화 물감은 쓰지 않고 다른 재료를 쓰겠다는 거였네요.
맞아요.
회화만큼 ‘재료의 순수성’에 집착하는 매체는 없을 거예요.
지금 작가들이 조각을 전부 대리석으로 만들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요.
그런데 회화에서는 순수성, 위계적 순수성을 고집하죠.
저는 물감을 쓰지 않으면서 내 이야기를 회화사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조각가가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을 쓰지 않아도 조각사에 들어가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사실 저에게 중요한 건 재료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권력’이에요.
— 그 말은 당신이 ‘유화’를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맞아요. 그와 동시에 저는 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것도 추상. 특히 미국 추상.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 1950년대.
세상과의 문을 닫아 버리고 캔버스와 아주 원초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그 개념.(모더니즘) 저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아요.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 작가들의 작업실 밖에서 마틴 루서 킹은 암살됐고 민권 운동이 일어났어요. 잭슨 폴록이 ‘타임’ 표지에 실릴 때와 같은 시기였죠.
1950년대 미국 추상은 아주 글로벌하게 퍼져 나가서 한국에서까지 볼 수 있는 것이 되었지만.
그건 미국 내부가 정치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형상이 없는 추상을 미국의 이미지로 바깥에 보낸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폭풍이 몰려온다(Here Comes the Hurricane), 2025, 캔버스에 혼합재료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번에 공개한 신작 ‘폭풍이 몰려온다’가 있는 마지막 방이 생각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끄집어낸 느낌? 작가님에게 직접 설명을 듣고 싶어요.
그 작품은 아주 층위가 많아요.
자연재해인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있고, 카트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트랜스젠더 여성이 있으며, 필라델피아에서 볼룸 문화를 만든 최초의 드랙퀸 윌리엄 도시, 그리고 나 자신이 있어요.
우리가 공유하는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겁니다.
저는… 모든 역사를 하나로 불러와, 방 안에서 소용돌이치듯 함께 회전하는 힘을 만들고 싶었어요.
‘폭풍이 몰려온다(Here Comes the Hurricane)’ 연작의 회화 작품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사진 김민. — ‘폭풍이 몰려온다’가 전시된 방에서 저는 윌리엄 도시라는 사람을 세상이 지우려 했지만, 그런 억압이 시간이 지나 더 큰 반작용으로 돌아와 태풍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고 집어삼키는 움직임이 느껴졌어요.
맞습니다. 정확해요.
사실 이 연작을 뉴욕이나 할렘에서 발표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쉬운 길 같았어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허리케인은 예상 못 하는 것에서 불어오는 거니까. 그걸 서울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그 허리케인이 바로 저일 수도 있고요.
나, 마크 브래드포드가 서울로 온 허리케인 인거죠.
— 흥미롭네요. 네 그런 허리케인 같은 휘몰아치는 바람이 느껴졌어요.
그걸 느꼈다니 너무 좋네요.
맞아요. 한국인이라고 이걸 이해할 수 있고, 저건 이해할 수 없다. 저는 그런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지역성(locality)을 믿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진리도 있다고 믿어요.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이 작업을 이해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He Would See This Country Burn if He Could be King of the Ashes), 2019, 혼합재료.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당신이 ‘계속해서 걸어 나가고(keep walking)’ 그 뒤로 폭풍이 밀려오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네. 맞습니다. 제 작품은 허리케인이 오는 것과 같아요.
사실 한국에서 ‘폭풍이 밀려온다’ 연작을 공개하는 건 저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험이었어요.
한국의 문화에 대해 내가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이건 흑인 문화에 관한 이야기니까 다르게 읽힐 수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아냐, 하자. 그냥 하자. 여기서도 좋을 거야. 라고 생각했죠.
—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후련해요. 가만히 있지 말고 원하는 것을 싸워서 얻어 내라는 메시지가 느껴져서요.
정말요? 그럼 됐어요.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거였어요.
다음 세대의 관객들이 내 작품을 보고 용기를 내는 거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반드시 몰려오게 되어 있으니, 그들이 제 작품을 보고 용감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마크 브래드포드: Keep Walking - 2025년 8월 1일 ~ 2026년 1월 25일 -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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