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네 번째 시즌이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마리 퀴리’는 제목이 소재이자 주제다. 누가 봐도, 원소 라듐을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소르본대 최초의 여성 교수였던 그는 흔히 위인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작품마저 ‘영웅 찬가’로 흘러갔다면 재미 없을 터. 뮤지컬에서 마리는 가상의 여성 ‘안느 코발스카’와의 우정을 통해 보다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시즌은 이전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광림아트센터 BBCH홀로 무대를 옮기며 한층 스케일이 커졌다.
극은 소르본대 입학을 위해 파리로 향하던 마리가 동향인 폴란드에서 온 안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약소국인 폴란드인이자 여성이었던 두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된다. 남편과 함께 라듐을 발견한 마리는 특허를 내지 않고 무상으로 기술을 제공하고, 안느는 마리의 소개로 라듐 시계 직공으로 취업한다.
그러나 ‘라듐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들어간 공장에선 계속해서 직공들이 목숨을 잃는다. 당시 과학자들은 새롭게 발견한 라듐의 좋은 점만 인식했지만, 실은 남용하면 인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무서운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시계 야광판을 만들던 직공들이 피폭당한 ‘라듐걸스 사건’을 녹여 드라마틱한 요소를 극대화했다.
해당 뮤지컬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마리를 박제된 위인전 속 인물이란 단선적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대 드물었던 여성 과학자로서 겪는 차별과 갈등, 또 한 인간으로서 호기심과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마리가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노래한 넘버 ‘두드려’는 독특한 피아노 연주와 강렬한 보컬이 잘 어우러진다. 또 다른 넘버 ‘또 다른 이름’의 폭발적인 고음은 라듐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는 절박함을 드러냈다.
‘마리 퀴리’는 해외에서도 관심이 큰 작품.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가든스 페스티벌에서 최고상인 ‘황금물뿌리개상’을 수상했다. 2023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라이선스 초연도 펼쳤다. 지난해 한국 뮤지컬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을 올렸다.
이번 시즌은 기존에 출연했던 배우 김소향, 옥주현과 더불어 박혜나와 김려원이 마리로 합류했다. 안느 역은 강혜인 이봄소리 전민지가, 마리의 남편이자 동반자인 ‘피에르 퀴리’ 역은 테이와 차윤해가 맡았다. 10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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