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BTS, 블랙핑크,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등장했다. K팝에는 노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미국 ‘워싱턴포스트’)
“K팝은 음악의 한 장르라기보다 팬덤을 육성하는 산업 모델에 가깝다. 케데헌은 K팝 방식 그대로 흥행을 얻어낸 것이다.”(차우진 음악평론가)
지극히 K팝적인 K팝에 기념비적 순간을 안겨준 케데헌에 대한 외신 및 평론가의 분석이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 빌보드 차트를 비롯한 전 세계 음원차트를 석권하며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이 전 세계를 케데헌 신드롬으로 몰아넣었을까.
우선 K팝의 특징을 잘 살린 OST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빌보드 핫100 차트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동시 석권한 ‘골든(Golden)’을 비롯한 케데헌의 음악들은 K팝 특유의 멜로디 라인과 글로벌 리스너들에게 익숙한 미국 팝의 가창 방식을 합쳐 만들어졌다. 극중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Your Idol)’ 역시 스포티파이 미국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작곡가 이재(EJAE), 한국계 미국인 가수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 등이 부르고 K팝 기획사 더블랙레이블의 테디 등이 작곡에 참여해 K팝을 구현해냈다.
특히 “더는 숨지 않아, 난 빛날 운명이니까”라고 외치는 ‘골든’ 가사는 케데헌의 스토리와 맞물려 빛을 내고 있다. 걸그룹 헌트릭스가 노래를 통해 악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는 시놉시스는 누군가에겐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K팝 팬들에게 익숙한 서사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케데헌의 주제는 BTS 앨범 ‘LOVE YOURSELF(너 자신을 사랑하라)’ 시리즈, “이건 소녀들의 주문이야. 네 매력을 뽐내라는 말이야”라고 외친 블랙핑크 제니의 솔로곡 ‘Mantra(만트라)’와 공명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비밀을 감추고 살다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스토리 라인과 음악이 어우러져 효과를 더했다”며 “이는 K팝이 주창하는 회복과 성장 서사에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럴’되는 방식 역시 K팝 문화와 닮았다. 특유의 캐치한 멜로디는 유튜브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수많은 챌린지로 이어졌다. 북미와 영국 등에서는 1100개 넘는 영화관에서 케데헌 ‘싱어롱 상영회’(영화 속 노래를 관객들이 함께 부르면서 즐기는 상영 방식)가 열린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케데헌은 팬덤에 힘입어 넷플릭스 공개 9주 차에 영화 부문 전 세계 1위를 되찾았다. 누적 시청 수(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개념)는 2억1050만으로 영화 부문 역대 1위(‘레드 노티스’ 2억3090만)와의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차우진 평론가는 “K팝 팬덤이 대중문화에서 ‘덕후’ 같은 전형성을 벗어나 남녀노소 누구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작품”이라며 “글로벌 K팝 팬덤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까치호랑이 배지를 사려는 사람들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오픈런 현상도 생겼다. 넷플릭스 제공“이민자의 거리감이 보편성 확보” 한국 시청자들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고증이 살아 있는 디테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하기도 한 ‘설렁탕에 깍두기를 넣어 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헌트릭스 멤버들은 식당에서 수저를 놓기 전 냅킨을 깔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한의원을 찾는다. 민화 ‘작호도’(또는 호작도)에서 따온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가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남산타워를 찾거나 성곽길을 걷는다. 이는 영화를 공동 연출한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이 살린 디테일이다.
일각에서는 케데헌이 한국적인 디테일만 차용했을 뿐, 일본 자본이 들어간 소니픽처스가 제작하고 미국 넷플릭스가 배급한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흥행으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을 넷플릭스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K팝 종주국인 한국은 케데헌 같은 작품을 왜 진작에 만들지 못했느냐는 핀잔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글로벌한 협업 방식에 주목해야 한국 문화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인끼리만 모여서 작업한다면 자칫 민망한 장면들이 나오거나, ‘국뽕’에 심취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반면 이민자 특유의 한국에 대한 향수와 거리감이 세계에 소구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케데헌은 이민 1.5세대 강 감독과 소니픽처스에서 일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K팝 시장 최전선에 있는 작곡가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이를 제작 단계에서 승인한 소니픽처스와 전 세계 안방에 배급한 넷플릭스의 공도 크다.
정덕현 평론가는 “글로벌 협업이 콘텐츠 시장의 표준이 된 만큼 이번 사례를 통해 협업과 계약 기술을 배워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만들 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사실 K팝이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차지하는 볼륨은 크지 않다”며 “K팝을 제목 전면에 내세운 케데헌의 흥행은 한국이라는 이름이 각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데헌이 이끈 한국에 대한 관심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6월 말 작품 공개 이후 전 세계 ‘Korea’ 검색량은 2년 8개월 만에 최대치로 치솟았다. 이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직후보다 높은 수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케데헌에 등장하는 ‘까치호랑이 배지’를 사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 오픈런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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