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말차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행이 패션 트렌드로도 옮겨붙었다. 말차 음료, 디저트를 넘어 초록색 계열 옷과 네일아트를 즐기는 ‘말차코어’(말차+Normcore)가 유행이다.
트렌드는 연예인들의 ‘말차 인증샷’에서도 드러난다. 이달 17일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 소셜미디어(SNS)에 말차를 마시는 사진을 게시했고, 이튿날 배우 차정원은 “말차같은 운동화 끓여왔다”며 말차 음료와 말차 색 운동화 패션을 찍어 올렸다. 해외에서는 감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젊은 남성들이 말차를 패션 소품으로 활용하는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이 SNS 밈으로 확산하고 있다.
LF몰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20일까지 ‘그린·카키·민트’를 키워드로 한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급증했다. LF몰 측은 “전통적으로 가을, 겨울철에 선호하는 색상이기에 이례적”이라며 “말차 유행의 영향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한반도에서 말차가 사랑받는 건 비단 오늘날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말차 열풍에 대해 “그 시작은 11~12세기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송나라에서 고려로 전래된 말차는 사찰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음용됐다고 한다. 불교 승려에게 말차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수행 방식이었다. 고연미 차학인문연구소장은 “개경에서는 다점(茶店)이 성행하면서 문인뿐 아니라 서민도 말차를 즐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인로(1152∼1220), 이규보(1169~1241) 등이 남긴 문집에서도 말차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이인로는 시 ‘승원다마’(僧院茶磨)에서 찻잎을 갈아내는 모습에 대해 “옥가루가 날린다”고 표현했다. 이는 당대 유행한 차 마시는 방식과 관련된다. 찻잎을 다마(茶磨·차맷돌)로 곱게 갈아 끓인 뒤 휘저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으로, 오늘날 말차를 만들어 먹는 법과 유사하다.
말차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명맥이 거의 끊긴 것으로 보인다. 정진원 국민대 도자공예과 교수는 “숭유억불을 기조로 한 조선에서는 일부 호남지방과 사찰을 제외하곤 차 문화가 대부분 종적을 감췄다”며 “대신 숭늉을 즐겨 마셨고, 다과상에는 주로 식혜나 수정과가 올라왔다”고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생활이 피폐해짐에 따라 차를 마시기 어려워진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1960~199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여유롭게 차를 우려 마시기보다는 티백형 녹차를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역시 검소함과 절약을 강조한 14세기 명나라대를 지나면서 말차 대신 찻잎을 우리는 방식이 보급됐다고 알려졌다. 정 교수는 “일본은 그와 달리 800년 이상 말차 전통을 이어오면서 고유한 식문화로 인정받고 있다”며 “오늘날엔 웰빙을 추구하고 ‘녹색 갈증’을 느끼는 젊은 층 문화와 잘 부합하면서 국내외에서 재조명되고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