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랙핑크 리사는 영국 런던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마친 뒤 ‘인간 라부부’가 된 인증샷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했다. 북슬북슬한 핑크색 털, 기다란 귀와 동그란 눈, 그리고 허리춤엔 자기와 똑같은 ‘라부부’ 인형을 달고 있었다. 리사뿐만이 아니다. 67세 팝스타 마돈나는 생일 축하 파티에서 라부부를 패러디한 모양의 ‘마두두’ 케이크를 받고 촛불을 부는 모습을 역시 소셜미디어로 공개했다.
최근 세계에서 중국의 인형 캐릭터 하나가 엄청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름하여 ‘라부부(Labubu·拉布布).’ 2015년 홍콩 작가 룽카싱이 북유럽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이 캐릭터는 2019년 상품화됐다. “못생겼지만 귀엽다”며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더니,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도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 됐다.
구글 트렌드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 4월 글로벌 ‘라부부’ 검색량은 일본이 자랑하는 인기 캐릭터 ‘헬로키티’를 추월했을 정도다. 라부부의 독점 라이선스를 계약하고 상품을 유통 중인 중국 기업 팝마트의 실적도 수직 상승했다. 2020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팝마트 주가는 지난해 연초 대비 13배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현재 3600억 홍콩달러(약 64조 원)에 이른다.
늘씬한 바비도 아니고, 귀여운 동물도 아닌 날카로운 이빨의 털북숭이가 왜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까. 해외에선 장기간 이어진 팬데믹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리서치 회사 ‘초잔’의 설립자 애슐리 두다레녹은 영국 BBC에 “2022년 말 중국이 팬데믹을 벗어날 때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는데, 완벽주의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라부부가 딱 들어맞았다”고 분석했다.
서서히 동남아로 인기가 확산되던 라부부가 ‘글로벌 스타’가 된 건 리사의 공이 크다. 자칭타칭 라부부 매니아인 그가 지난해 4월부터 라부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자, 서구에서도 관심이 폭발했다. 이후 가수 리한나와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이 라부부 인형을 들고 있거나 선물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인기에 불을 붙였다.
이러다보니 라부부 사건도 벌어진다. 영국에선 라부부를 사려고 팝마트 매장 앞이 혼잡해지고 다툼까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이어지자, 5월부터 모든 팝마트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부부 판매를 중단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시가 3만 달러(약 4000만 원) 상당의 라부부 인형을 훔쳐서 팔려고 했던 창고 직원 2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AP/뉴시스라라부의 인기는 판매 방식도 한몫했다. 라부부가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돼 MZ세대의 ‘인증샷’과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는 해석이다. 라부부는 다양한 모양으로 출시되는데, 포장을 뜯기 전까진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새로 산 라부부 박스를 열며 만족이나 실망을 표하는 ‘언박싱’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했다. 가수 이영지가 라부부를 구매해 상자를 열어봤는데 짝퉁이 나와 실망하는 영상은 대만 뉴스에도 보도됐을 정도다.
이러한 판매 전략은 중독적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도파민 경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하는 라부부 인형이 나올 때까지 중복적으로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131cm 크기 민트색 라부부 인형은 한 경매에서 108만 위안(약 2억 원)에 낙찰돼 ‘투기 조장’이란 비난마저 일었다.
전문가들은 라부부를 언박싱하면서 느끼는 설렘이 ‘도박 중독’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 최지혜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라부부의 인기는 MZ세대의 셀럽에 대한 선망과 랜덤 판매에 따른 소비 갈망 심리 등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과열 양상이 계속될 경우 사회적 피로도나 경각심이 커지면서 지금 같은 열기는 가라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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