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죠? 이건 곧 허락한다는 의미 아닌가요. 멈추라고 왜 크게 말하지 않았나요?”
유능한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던 테사. 그는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법정에서 이렇게 묻곤 했다.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달렸던 그에게 재판은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성폭행 가해자를 변호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피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 피해자에게도 테사는 가혹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테사는 동료 변호사에게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된 그는 변호사로서 피해자들에게 했던 질문을 자기가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법을 잘 알기에 자신의 피해를 법정에서 입증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테사는 진실을 밝히겠단 일념으로 782일간의 외로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
2019년 호주에서 초연한 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여성 1인극 ‘프리마 파시’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국내 초연을 펼치고 있다. 인권 변호사 출신 극작가인 수지 밀러가 쓴 이 작품은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고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이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엔 나무 책상과 의자, 조명 등 소도구만이 놓여 있다. 이 소품을 옮기며 배우가 10여 명의 인물을 홀로 연기하며 러닝타임 120분을 이끌어 간다. 세 배우의 개성에 맞춰 동선이나 소품이 조금씩 다르게 연출된다. 신 연출은 “테사의 중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각 배우가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상황에 맞췄다”고 설명했다.
‘프리마파시’의 배우 이자람. 쇼노트 제공“김신록은 날카롭지만 의외의 면모가 있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입니다. 이자람은 포근하지만 한없이 따뜻하기보다 역할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해설자처럼 관객을 이끌어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측면이 있죠. 차지연은 부상으로 아직 무대에 못 올랐지만 두 배우의 중간 지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 연출은 ‘프리마 파시’의 매력으로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을 꼽았다.
“일반적인 공연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작품은 공연의 옷을 입은 현실이란 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는데 주변에선 공감이나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반복되고 있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테사의 말에 관객의 마음이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극을 준비했습니다.” 11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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