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 죽음과 삶, 몸과 언어… 경계를 넘어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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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일 예술의전당서 고블린파티-갬블러크루 공연 ‘귀문’
현대무용 단체-비보이 그룹 만남 … 거센 타악 소리 굿판 벌이듯 무대
비보잉에 칼춤 더해 한국적 요소
“한발 한발 인생 ‘경계’ 넘나든다”

고블린파티X갬블러크루의 현대무용 ‘귀문’. 무용수들은 기다란 봉을 바닥과 수직으로 세워 경계를 만들고, 그  사이를 오가며 ‘인생의 문’을 드나드는 과정을 표현한다. 옐로밤 제공
고블린파티X갬블러크루의 현대무용 ‘귀문’. 무용수들은 기다란 봉을 바닥과 수직으로 세워 경계를 만들고, 그 사이를 오가며 ‘인생의 문’을 드나드는 과정을 표현한다. 옐로밤 제공
둥글게 모여 선 무용수 9명이 땅에서 검을 뽑아 올렸다. 빗방울처럼 튀어 오르는 가야금 연주, 약동하는 북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뒤이어 꽹과리와 드럼 등 빠른 타악이 가세하자, 춤이 휘몰아치듯 펼쳐졌다.

5일 오후 7시경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연습실.

12∼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현대무용 ‘귀문(鬼門)’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현대무용단체 ‘고블린파티’와 비보이그룹 ‘갬블러크루’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지난해 9월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선 30분 분량으로 선보였으나 이번엔 1시간 길이로 대폭 늘렸다.

이 작품은 사람이 살면서 마주하거나 넘어야 할 일들을 ‘문을 열어젖히는 과정’으로 표현한다. 무용수로선 “언어와 신체의 경계, 전통과 현대의 경계”도 이에 속한다. 지경민, 임진호 안무가는 ‘귀문’을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넘어설 수 없지만 언젠가 스스로 열어야 하는 문”이라고 설명했다. 임 안무가는 과거 장례지도사로 일한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문턱 앞까지 우리는 한 발 한 발 힘겹게 나아가면서 각종 ‘경계’를 넘게 되죠. 이승과 저승, 현실과 이상, 몸과 언어 등을 아우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작품은 분위기가 언뜻 최근 세계적인 붐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떠오른다. 지 안무가는 “약 1년 반 전부터 기획된 작품”이라며 “케데헌의 ‘혼문’이 닫혀야 하는 문이라면, 귀문은 일상을 관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는 도입부에 무용수 2명이 ‘검정 갓’을 쓸 예정이었으나, 케데헌을 과도하게 연상시켜 상상력을 저해할까 봐 일반 모자로 바꿨다고 한다.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도검과 나무 봉, 타악기 등을 활용해 굿판을 벌이듯 춤을 춘다. 남미 전통 타악기인 ‘카혼’도 등장한다. 네모난 상자처럼 생겨 무대에선 묘비나 관(棺)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 안무가는 “칼춤 등으로 우리만의 한판을 만들고 싶었다”며 “사람들은 종종 상대방을 귀신으로 여기고 해하고 미워하지만, 이는 한밤중 방 안의 옷을 보고 귀신으로 착각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고블린파티는 ‘도깨비들이 모인 정당’이라는 뜻이 담겼다. 2007년 결성된 뒤 한국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매진해 왔다. 2017년 초연한 ‘은장도’는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고자 칼을 지니고 다녔던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임 안무가는 “옛날이야기는 관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국적을 불문한 ‘클래식’이자 상상력의 토대”라고 했다. 세계적인 비보이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 등에서 우승한 갬블러크루는 ‘귀문’에서 다채로운 비보이 스텝과 고난도 스핀 동작을 자연스럽고도 멋스럽게 녹여냈다.

K컬처의 세계적인 열풍 덕에 이들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고블린파티는 지난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공연을 가졌다. 갓을 쓰고 도포를 걸친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작품 ‘옛날 옛적에’는 2026년 스페인 마드리드 ‘카날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현대무용#고블린파티#갬블러크루#타악기#케이팝 데몬 헌터스#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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