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로 호환마마 퇴치? 백신 개발로 멸종 완료[곽재식의 안드로메다 서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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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박한슬 지음/252쪽·1만6500원·북트리거


옛사람들은 불운을 맞이하거나 재수 없는 사건이 자신에게 자주 일어나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악한 귀신이 해코지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당 등에게 귀신과 소통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귀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나 춤을 곁들여 신비의 의식을 치르기도 했는데, 만약 귀신이 만족하면 더는 심술을 부리지 않고 악운은 사라진다고 여겼다.

이런 믿음은 조선 시대까지도 널리 퍼져 있었다. 심지어 엄격한 법도에 따라 잡신을 믿는 것을 멀리하던 조선의 궁중에서조차 ‘국무(國巫)’, 그러니까 나라의 무당이라고 하는 사람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나온다.

옛사람들이 재수 없는 일로 생각했던 문제 중에는 질병도 있었다. 지금이야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대신 엉뚱하게도 동네의 한 맺힌 장군 혼령을 달래 주는 행사나 각종 주술에 긴 세월 공을 들였다. 유명한 사례로, 숙종의 어머니는 아들이 천연두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그 어머니가 찬물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국무의 주술을 믿고 열심히 직접 찬물을 뒤집어썼다.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를 뽑는 시술처럼 중세 유럽에서 몸에 좋은 일이라고 했던 여러 치료 행위들이 지금은 부질없는 일로 판명된 사례가 많다.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겼던 풀이, 알고 보니 사실은 그저 마약처럼 신경을 망가뜨려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효과뿐임이 드러난 일도 있다.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시달리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현대의 세계에서 천연두에 감염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감염되고 싶어도 감염될 수 없다. 과학의 힘으로 백신이라는 예방약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사람의 협력으로 1980년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지구에서 멸종시키는 작업까지 완수됐다. 이런 일은 천연두 귀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이나 혼령을 달래는 일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과학의 쾌거다.

나는 이런 변화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까지 바꿨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초능력을 무턱대고 주장하거나 그저 시키는 대로 정성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주술을 강요하던 옛 시대는 벗어났다. 이제는 누구든 객관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현상을 증명하고 검증하여 그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의 세상이 찾아왔다. 그렇기에 과학에 바탕을 둔 근대적인 약은 바로 우리 시대를 상징한다고 할 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약에 대한 지식의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책을 골라 보라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를 추천해 보고 싶다. 이 책은 현직 약사이면서 무슨 내용이든 간결하게 정리해 글을 쓰는 데도 뛰어난 작가가 백신을 포함해 소화제, 진통제, 고혈압약, 관절염약 같은 일상에서 친숙한 다양한 약에 대해 종류별로 핵심 지식을 설명했다. 그래서 사람의 몸과 몸에 반응하는 약에 대한 기초 과학 지식을 채우기에 좋은 책이다. 자주 소비하는 여러 약들에 대해서 오해하기 쉬운 사항을 소개해 둔 대목도 눈에 띈다. 그렇기에 실용적인 약 지침서의 용도로도 좋은 책이고, 어떤 약에 대해 관심이 생길 때마다 다시 그 부분을 펼쳐 읽어 보기에도 편리하다. 우리 사회에서 약의 중요성을 돌아본다면, 이런 지식을 쌓아 두는 일은 곧 우리 시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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