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펴낸 강지나 씨
10여년간 8명의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기록
성찰하는 힘 기르려면 ‘공동체’ 있어야
강지나 교사
25년 전 교사 생활을 시작한 강지나 씨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자괴감은 깊어졌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강 씨는 박사 논문의 주제를 ‘빈곤 대물림’으로 정하고 연구를 위해 20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다. 논문을 마친 뒤에는 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10여 년 간 8명의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며 마주하는 문제를 기록한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2023년 펴냈다.
책 제목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강 씨에게 물었다.
―빈곤 청소년을 오랜 시간 지켜봤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흔한 통념과 실제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
“흔히들 ‘가난한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잘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표현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제도도 성숙해져서 빈곤 때문에 학교에서 낙인이 찍히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고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통념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만난 청소년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아이를 꼽는다면.
“소희(가명)가 떠오른다. 소희는 중학교 3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과 비행을 반복했지만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았다. 소희의 가족은 빈곤 대물림의 전형이었다. 가난한 알코올중독자였던 소희의 외할머니로부터 불안정한 환경이 계속됐다. 결핍된 어린시절을 보낸 소희의 어머니는 성인이 된 이후 이혼과 가정폭력, 우울증을 겪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갔다. 가족은 소희를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소희는 어떤 어른이 됐나.
“소희는 똑부러지고 삶의 의지가 있는 아이였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우울과 불안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소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와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걸 어려워했다. 가출과 비행을 반복하던 과거의 자신도 용서하지 못했다. 소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환경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빈곤 대물림이 남긴 정신적·심리적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상처가 사라지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빈곤 청소년에게 꾸준히 오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청소년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을까.
“성찰하는 힘이다. 자신이 사회 구조 속에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힘을 뜻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단단한 내면의 힘을 갖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생존 자체에 많은 에너지를 쓸수록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언뜻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예컨대 돈이 생기면 저축하기보다 당장 맛있는 걸 사 먹는다든지, 공부 대신 배달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는 일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다’라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당장 현금을 손에 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성찰하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본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꼭 부모나 성인이 아니어도 된다. 가장 고민이 많을 때는 어린시절 같이 자란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에게 연락하면서 힘을 받는다고 한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보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크다.”
―가난을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서 친구의 계급을 구분하는 일도 있는데.
“‘나도 그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혐오를 낳는다. 빈곤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라는 사회적 조건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나와 관계없는 타자’로 여기니까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분리하려는 움직임,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일들도 모두 이런 맥락과 연결돼 있고, 아이들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섞이지 않으면 갈등은 더 커지고 범죄나 불평등과 같은 일은 결국 내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야 사회를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내가, 내 아이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빈곤 청소년을 위해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가난한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는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있는 존재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또 주변을 둘러보면 각 지역사회마다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이 굉장히 많다. 그곳에 가면 기부부터 작은 봉사활동, 후견인 활동 등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각자 사는 지역에서부터 그런 활동을 찾아 나선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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