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현대카드 다빈치모텔’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대담
“안테나 생존, 우리와 같은 생각하는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기회”
ⓒ뉴시스
“전 되게 ‘운이 좋았던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그 운이 온전히 내 것이었나’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잘 몰랐었어요. 한참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봤더니, 제 것이 아니더라고요. 절 둘러싼 사람들의 운이 다 제게로 와준 것이었죠. 감사하게도요. 어느 순간 제 그릇에 담긴 운이 넘쳤던 것 같아요.”
연예기획사 안테나(Antenna)를 이끄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유희열이 3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왔다. 그는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 ‘2025 현대카드 다빈치모텔’에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대담자로 나섰다.
앞서 유희열은 2022년 모 브랜드와 협업한 ‘[생활음악]’ 프로젝트의 하나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음악 거장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Aqua)’가 유사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유희열은 곡의 메인 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면서 사과했다.
다만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는 안테나에 편지 형식으로 보낸 입장문에서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아쿠아(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나의 악곡에 대한 그의 큰 존경심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유희열은 사카모토 류이치를 표절했다는 의혹에서 일부 자유로워졌다. 한편에선 코드 진행 일부가 겹친다는 이유로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럼에도 유희열은 책임을 지고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 4월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페셜 DJ로 방송에 복귀했으나, 대중과 만나는 자리는 2022년 이후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크게 욕을 먹고 살아본 적은 없었다는 유희열은 이번 건에 대해 속마음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팩트의 영역이 있고, 인식의 영역이라는 게 존재를 하는데 이 얘기를 하려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제 힘으로 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여러 가지”라고 인정했다.
한창 힘들 시기에 유시민 작가와 대화를 했는데, 그가 뼈를 때리는 한마디를 남겼다고 전했다.
유 작가는 출판사 운영을 예로 들면서 대표가 담당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는데 동시에 대표가 직접 글까지 쓰려면 엄청난 재능이 있어야 하거나 엄청난 시간,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서 자리를 내주는 것도 필요할 수도 있다”라는 얘기였다.
유희열은 이 얘기와 함께 가장 후회됐던 부분도 털어놨다. “정말 정신이 없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피아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서 좀 가볍게 작업을 했어요. 그게 제일 후회됐던 순간이에요. ‘화살이 왜 내게 올까’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 계속해서 (문제 원인을) 저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간 가장 힘들었던 건 본인보다 가족, 주변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며 “이제는 상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보다도,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것 같아요. ‘더 단단해지고 견디는 시기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너무 운이 좋고 정말 혜택 받은 사람이라거든요. 다른 분들에게 그걸 다 맞춰도 모자르겠다라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한다”고 했다.
서울대 작곡가 출신인 유희열은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 ‘좋은 사람’ 등 감성적인 노래로 유명한 1인 프로젝트 ‘토이’를 이끌고 있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등 오랜기간 라디오 DJ로서 마니아를 구축한 그는 tvN ‘SNL코리아’, MBC TV ‘무한도전’의 ‘무도가요제’, JTBC ‘슈가맨’ ‘싱어게인’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였다. 그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창구로 통했다.
음악회사 경영자이기도 하다. 유희열이 1997년 설립한 ‘토이 뮤직(Toy Music)’은 2007년 안테나 뮤직으로 회사명을 변경했고, 2015년 지금의 안테나로 확정했다. 올해가 안테나 10주년인 셈이다. 2021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된 이 회사엔 정재형, 루시드폴, 페퍼톤스, 이효리, 이상순 같은 뮤지션뿐 아니라 MC 유재석, 배우 이서진 등이 속해 있다. 그럼에도 안테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음악회사다.
유희열은 현재 최대 고민이 회사 운영이라고 했다. 웹콘텐츠인 ‘핑계고’부터 시작해서 신인 밴드 ‘드래곤포니’, 새 앨범 작업 중인 정승환, 슈퍼주니어 규현 등 애정을 쏟을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토이뮤직 시절을 포함해 안테나 뮤지션들을 세대별로 구분해봤다고 했다.
1세대는 정재형, 페퍼톤스, 루시드폴, 박새별 등 20년 전에 동호회처럼 만났었던 사이다. 2세대는 SBS TV 오디션 ‘K팝 스타’를 통해 동행하게 됐었던 권진아, 정승환, 샘킴, 이진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안테나에 들어왔던 적재, 윤석철 등이 있다. 드래곤포니가 3세대의 시작으로, 이제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팀 단위로 선보이게 됐다.
유희열은 “음악하는 형태도 바뀌었고, 음악을 소화해하는 대중들의 반응도 바뀌었고, 플레이어들의 개념도 바뀌어서 잘 대응해 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래도 1세대 유산만큼은, DNA만큼은 놓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 중”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유희열은 우리 음악계의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성장한 K-팝이라는 전무후무한 시스템을 다음 세대에게 잘 적용해 다 같이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정태영 부회장이 그런 상황에서 K-팝 가수가 아닌 이들까지 같이 가야 하는 건 남들보다 어려운 게임이 아니냐고 묻자 “그래서 실무하시는 분들이 엄청나게 힘들다”고 동의했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음악만 만들어 세상에 딱 내면 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소셜 미디어도 해야 되고, 팬미팅도 해야 되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예요. 이 고민의 이유는 저희도 결국 생존해서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살아남아야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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