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집가’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이다”로 시작해서 “물론 진실은 알 수가 없다”로 끝나는 15개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정통 도시괴담 모음집이다.
늦은 밤 빈 지하철 객차 안에서 문득 눈에 띈 가방,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맞이한 정체 모를 룸메이트, 구제 시장에서 산 의문의 얼룩이 묻은 옷, 혼자 사는 집에서 한밤중에 울리는 초인종,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 현대의 도시에서 살고 있거나 살아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그리고 내가 가장 열광하는 종류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정보라 소설가세상은 크고 복잡하다. 게다가 도시에 살면 낯선 사람과 낯선 물건들이 끊임없이 내 생활 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중 귀신 들린 물건이나 비정상적인 존재가 하나쯤 없으리란 법은 없다. 책에 실린 ‘방문자’와 ‘절대 검색해서는 안 되는 단어’에서 21세기의 귀신은 이제 인터넷을 타고 온다. 혼자 사는 삶, 즉 파편화된 도시의 개인에게 인터넷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연결돼선 안 될 존재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보통 괴담은 죽음에 대한 공포, 자기보호 본능에 기반한 두려움에서 탄생한다. 도시괴담은 여기다 익명성에 가려진 도시공간의 범죄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불안감을 한 겹 더 덮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하실’과 ‘옆집 사람’은 실제 일어났던 범죄사건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어느 원룸에서 이상하게 수도 요금이 많이 나왔다더라. 알고 봤더니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그 집에 살면서 피해자 시신을 화장실에서 처리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동네, 흔한 원룸일 뿐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이주민, 즉 ‘타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비튼다. 독자는 주인공 옆집에 사는 이주노동자가 설마 범인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혹시?’ 하는 의심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괴담답게) 독자의 짐작대로 흘러간다. 그 결말은 뻔하기 때문에 실망스럽다기보다 괴담 장르의 공식에 착착 들어맞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지하실’도 범죄사건에서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 지하실은 세 드는 사람마다 죽어 나간다더라. 그 지하실에 있던 이상한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실제로 시체가 발견됐다. 작가는 이 범죄를 치정사건으로 살짝 변용한다. 교제폭력의 가해자가 내 친구라면? 교제폭력을 저지른 살인자가 내 옆에 있다면? 남성의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은 두렵다. 친하다고 여겼던 사람에 대해 나는 실제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작가는 머리말에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의 실제 경험담”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혹은 털어놓았어도 거짓말이나 착각이라고 무시당했던 자신만의 사연을 내게 들려주었다”고 말이다. 즉 ‘누군가’ 겪은 (혹은 겪었다고 주장하는) ‘실화’이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이며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진실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전적인 도시괴담의 형식이자 전파 방식이다. 한편 괴담의 내용, 그리고 괴담이라는 장르의 본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시대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이며 예민한 주제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전직 문학연구자로서, 그리고 공포장르 애호가로서 ‘작가의 말’도 이어지는 이야기들만큼 흥미로웠다. 긴 연휴, 도시괴담과 함께 하는 짜릿한 가을을 즐겨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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