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복을 입고 행사장을 방문한 김하은 씨와 녹음 씨.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사실 좋으면 불편해도 입고 다니잖아요. 하이힐처럼요. 저한테는 한복이 그래요.”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2025 오늘전통축제’ 현장. 20·30대 여성들이 곱디고운 한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풍경은 ‘전통은 촌스럽다’는 오래된 인식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행사장은 그야말로 전통문화에 빠진 젊은 세대로 북적였다.
● 호랑이 키링부터 사자보이즈 한복까지…MZ 사로잡은 전통 굿즈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이번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했다. 전시·공연·체험·마켓을 아우른 복합문화행사로, 올해 주제는 ‘풍류예찬; 오래된 멋, 오늘의 일상으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샵 ‘뮷즈’에서 판매중인 ‘리플렉터 호랑이 키링’.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행사장 1층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샵 ‘뮷즈’의 ‘리플렉터 호랑이 키링’ 부스 앞에 긴 줄이 늘어서며 눈길을 끌었다. 업체 관계자는 “이미 SNS에서 본 뒤 일부러 찾아온 20·30대 여성분들이 많았다”며 웃었다.
한복 판매 부스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사자보이즈 무대 의상을 여성용 한복으로 재디자인한 제품이 인기”라며 “외국인 방문객들은 곤룡포 티셔츠를 특히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그룹 사자보이즈의 의상을 여성용 한복으로 재디자인한 모습. 옆에는 곤룡포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 “한복은 덕질 대상”…2030이 말하는 취향 소비
현장에서는 한복을 입은 관람객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프랑스 국적의 30대 여성 A 씨는 “파리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소설과 시에 관심이 깊어졌다”며 “오늘 직접 입어보니 색감과 형태가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2025 오늘전통축제’에 2030 세대가 몰려 한복·전통 굿즈를 ‘덕질’하며 즐겼다. 한복 체험, 리사이클링 교환전, 전통 차 시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전통을 MZ 세대의 새로운 취향 소비로 이끌었다.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일상에서도 한복을 즐겨 입는 시민도 만나볼 수 있었다.
30대 직장인 김하은 씨는 “처음에는 생활한복으로 시작했지만, 전통 한복에 빠져들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녹음 씨는 “아르바이트비로 한복을 모아 벌써 50벌이 됐다”며 “저에게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덕질의 대상”이라고 했다.
현장은 단순히 한복을 입어보는 체험을 넘어, ‘취향 소비’와 ‘덕질’의 대상으로 전통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 헌 옷이 한복으로? 리사이클링 교환전에 시민들 웃음꽃
헌 옷을 가져오면 한복이나 전통 소품으로 교환해 주는 ‘리사이클링 한복 교환전’. 한 시민이 안 입는 바지를 기부하고 있다.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특히 눈길을 끈 건 ‘리사이클링 한복 교환전’.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의생활을 실천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했다. 특히 2030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바지를 내놓고, 대신 한복이나 전통 액세서리를 받아든 시민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헌 옷이 전통의 멋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 축제의 분위기가 한층 더 빛났다.
행사장 3층에서 전통 차 시음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 MZ, 전통을 ‘체험’하고 ‘멋’으로 소비하다
2030 젊은 세대가 전통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학계에 따르면, MZ 세대는 물질적 소비보다 개인화된 ‘체험 경험’을 중시한다.
한국예술경영학회에 실린 MZ 세대 체험 소비 연구에 따르면, 교육적·오락적·심미적 체험 요소가 장소 애착이나 행동 의도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즉, 한복을 ‘입어보는 경험’ 자체가 MZ 세대에게 특별한 의미로 작동하는 것이다.
또한 젊은 세대의 전통문화 관심은 단순한 미적 취향보다, 전통이 지닌 상징성과 의미에서 비롯된다.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연구에 따르면, 전통문화 상품을 선택할 때는 감정적 만족감과 아름다움, 상징성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는 젊은 세대가 한복을 단순한 옷이 아니라 ‘멋’과 ‘상징’으로 소비하는 현상과 이어진다.
행사장을 구경 중인 시민들. 다양한 한복을 입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 전통, K-콘텐츠와 만나 세계로 확산
이 같은 흐름은 K-콘텐츠 속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발간지 신문과 방송은 전통 무속 코드 등이 K-드라마·예능·음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젊은 세대의 개성과 정체성을 자극한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낯설고 촌스럽게 여겨졌던 무속 장면이, 세련된 외모와 현대적 감각을 지닌 캐릭터와 결합해 ‘힙한 개성’으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넷플릭스 코리아 제공 최근 기획된 글로벌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 역시 K-팝 아이돌 세계관에 한국 전통 무속적 요소를 결합했다. 전통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캐릭터와 서사를 강화하는 자원으로 쓰이고 있는 사례다.
가천대 조리라 교수는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흥행은 무속의 해원·치유·공동체 연대 기능이 오늘날 콘텐츠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전통이 단순히 보존 차원을 넘어 문화·산업적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잠재력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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