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초역 부처’… AI시대 ‘손 잡아주는 비문학’ 잘나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4일 04시 30분


살아남은 비문학 살펴보니
지식전달 역할 ‘백과사전형’ 외면
‘총, 균, 쇠’ 등 세계관 제공하거나
독자와 동행-질문하는 얘기 인기

최근 출판 시장에선 문학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비문학은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존재감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정보를 즉각 제공하는 시대다 보니, 오랫동안 ‘지식 전달’을 핵심 역할로 해 온 비문학이 약세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출판계에선 기존 ‘백과사전형’ 비문학은 막을 내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손민규 인문PD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같은 책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식 나열형 책들은 수요가 덜하다”고 전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도 “개념 설명을 나열하는 책은 기획 단계부터 걸러낸다”고 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독자에게 사랑받는 비문학은 어떤 게 있을까.

① 단순 지식 넘어 ‘세계관’ 제공


당연히 비문학이라고 모두 외면받진 않는다. 특히 스테디셀러들은 강하다. 2005년 국내 출간된 ‘총, 균, 쇠’와 2015년 나온 ‘사피엔스’는 여전히 잘 팔린다. 김영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해마다 8만 부 이상 팔렸다. 그래픽노블 버전인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도 2024년 유발 하라리 신작 ‘넥서스’ 출간과 맞물려 판매량이 9만 부까지 뛰었다.

이런 비문학 스테디셀러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지식에 접근하는 태도를 길러준다. 최신 정보가 아니어도, 독자의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문화 자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윤경 김영사 편집이사는 “거시적인 흐름을 문명사적으로 바라본 책들은 신간 이상으로 잘 팔린다”며 “단편적인 질문에 즉각 답을 내놓는 AI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② 곁에서 독자의 삶과 ‘동행’

지난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비문학도 공통점이 있다. ‘초역 부처의 말’(6위)과 ‘위버멘쉬’(16위), ‘쇼펜하우어 인생수업’(21위)은 종교나 철학 등 순수 학문과 자기계발서의 경계에 선 책들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전문서적에서 다뤄지던 내용을 격언 형태로 재구성해 ‘씹어먹기 좋게’ 만든 게 닮은 꼴”이라고 했다.

이런 책들은 ‘완결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불안이나 고독, 관계 등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는 문장을 제시한다. 철학을 설명하는 대신 사용하게 만드는 방식. 한 출판사 대표는 “비문학에 대한 기대가 ‘설명’에서 ‘동행’으로 이동한 결과로 보인다”며 “완독이 필요하지 않아 곁에 두고 가끔 펴 봐도 좋은 책들”이라고 분석했다.

③ ‘반 AI’ 느림과 불편을 지향

손 PD는 지난해 주목받은 비문학으로 ‘먼저 온 미래’와 ‘편안함의 습격’, ‘경험의 멸종’, ‘불안 세대’를 꼽았다. 모두 디지털 환경 아래 줄어든 신체 감각과 느린 시간, 불편함의 의미를 다룬 책들이다. AI로는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 비문학이 새로운 경쟁력을 얻고 있다.

이 책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서사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편안함의 습격’에서 저자는 직접 극한을 체험하기 위해 33일간 알래스카 순록 사냥을 떠난다. 비문학이지만 분명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저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가깝다. 독자는 정보를 얻기보단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김 출판사의 김미선 편집자는 “과거엔 비문학의 효용 가치가 지식 습득에 치중돼 있었다면, 지금은 인간다움과 새로운 나의 발견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능동적인’ 책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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