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자’ 제도 신설… AI인재 해외유출 막는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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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과학기술 인재 확보 대책 발표
中 석학 최고 예우 ‘원사’ 벤치마킹… 5년간 100명 뽑아 年 1억 등 지원
AI 분야 등 해외 연구자 2000명 유치… 李 “과학 문명 투자한 국가는 흥해”

정부가 과학기술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석학들에게 부여하는 예우인 ‘원사(院士)’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총 100명을 뽑아 10년 동안 매년 1억 원씩 연구비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를 열고 국가과학자 선발 등의 내용이 담긴 ‘과학기술 인재 확보 전략 및 연구개발(R&D)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과학자는 세계적 연구 업적을 가진 국내 연구자들이 해외 이직 없이 한국 안에서 연구를 이어 갈 수 있게 신설됐다. 5년 동안 20명씩 총 100명을 선발한다. 이들은 1년에 1억 원씩 연구활동비를 지원받는다. 정부는 이들에게 공항을 이용할 때 편의를 봐주고, 국가 연구 프로젝트 기획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날 해외 과학기술 인재를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핵심 전략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해외 연구자 2000명을 국내로 유치할 계획이다. 외국인 연구자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취업 지원을 확대하고 비자 제도도 개선한다. 또 국내 AI 인재 육성을 위해선 AI 과학영재학교를 신설한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새로운 이공계 롤모델인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해 우수 이공계 학생들에게 성장 경로와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는 중국이 원사급에 수십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다 ‘정년 해제’(정년 이후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 등 파격적 혜택이 없어 이공계 인재 유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민보고회에서 “과학 문명에 투자하고 관심을 가진 국가 체제는 흥했고, 과학기술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체제는 망했다”며 “상상하지 못할 규모로 연구개발 예산 규모를 늘렸다”고 강조했다.

‘국가과학자’ 10년간 年1억 지원 검토… 기업-대학 겸직, 처우 개선
[‘국가과학자’ 신설, AI인재 유출 막는다]
AI수석 “처우 차이 때문에 해외 선호”… ‘국가대표 과학자’ 선정해 예우 강화
대학원 장학금 수혜율 1.3%→10%… 영주-귀화 확대로 해외인재 유치도
이재명 대통령이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 참석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한민국은 연구개발(R&D) 성공률이 90%가 넘는다. 황당한 얘기다. 그렇게 쉽게 성공할 거면 뭐 하려고 (연구를) 하냐. 연구자 여러분한테 실패할 자유와 권리를 주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국민보고회에서 “연구개발은 정말로 어려운 분야에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실패가 쌓여서 성공의 자산이 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이날 과학기술인을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기술 패권’ 시대에 한국이 과학기술 인재 유출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사회적 대우를 높여 기술 인재 양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 1인당 매년 1억 원 지원… “10년 지원 검토”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과학자 선정 등 과학기술인 우대 정책이다. 정부는 2026년 말부터 5년 동안 매년 20명씩 국가과학자를 선정한다. 매년 1억 원의 연구활동지원금을 지급한다. 선발 대상은 국내 연구진 가운데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업적을 가진 사람이다. 지원 기간은 10년 정도를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부터 선정 절차에 들어가는 일정으로 계획하고 있다. 내년 말쯤에는 1호 국가과학자 한 20명이 선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국가대표 과학자’로 국가 주요 R&D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공항 패스트트랙 등의 예우도 검토 중이다.

대통령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은 “과학자, 특히 인공지능(AI) 분야 엔지니어들이 국내보다 해외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처우 차이”라며 “이 부분을 단시간 내에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 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 지수는 1만 명당 ―0.36명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0.22명)이나 그리스(―0.25명)보다도 인재 유출이 많았다.

당장 고연봉 보장이 어려운 부분은 미국의 얀 르쾽 뉴욕대 교수가 메타 수석과학자를 겸하는 사례처럼 기업과 대학 간의 겸직 허용 강화로 풀어간다. 하 수석은 “기업과 대학 간의 실질적인 겸직을 강화하겠다”며 “양쪽에서 월급을 다 받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 해외 인재 2000명 유치… “노벨상 받을 환경 만든다”

이번 대책은 과학기술 인재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여기에 인구절벽으로 인한 인구 감소로 국내 인재난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 영향으로 국내 이공계 석박사 과정 인력은 올해 정점을 찍고 감소세에 접어들어 2050년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부는 해외 인재 유치에도 힘을 쓰기로 했다. AI, 반도체 등 핵심 전략기술 분야에서 2030년까지 해외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는 게 목표다. 반도체 등 일부 첨단산업 분야 외국인에게만 주던 비자인 ‘톱티어 비자’를 전체 R&D 및 AI 분야 종사 외국인에게 준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원 등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만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영주·귀화 패스트트랙 역시 일반 대학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 내 인재 육성을 위해선 과학기술 인재를 기르는 생태계를 만든다. 현재 이공계 대학원 장학금 수혜율은 1.3%인데 2030년까지 이 비율을 10%까지 높인다. 대학원생에게 매달 일정 금액 지원을 해 주는 연구생활장려금 도입 대학도 35개에서 55개로 늘린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신진연구자 채용을 연 600명 내외로 확대하고, 정년 후에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정년 후 연구지원 사업도 신설한다. 하 수석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기저 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언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빠른 시일 내에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정부가 잘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편 윤석열 정부에서 크게 삭감하며 논란이 됐던 정부 R&D 예산은 매년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R&D 예산은 총지출 대비 4.8% 수준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원의 R&D 예산을 제대로 쓰고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실현해 과학기술 강국인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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