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美였다면 배상금 수십조”… 강제조사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0일 03시 00분


李 “형법보다 과태료 현실화 필요”
‘강제조사권 검토’ 법제처에 지시
美정보유출 1인 최대 1000달러 배상
美서 집단소송 계획… 쿠팡 압수수색

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쿠팡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쿠팡이 부담해야 할 피해 배상 금액이 최소 9800억 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올해 4월 2324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SK텔레콤에 부과된 과징금 1348억 원이 역대 최대 규모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쿠팡을 직접 언급하며 강제조사권을 통한 ‘과태료 현실화’를 주문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오전 국무회의에서 ‘경제 제재를 통한 처벌을 현실화하기 위해 강제조사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제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과태료 처벌 현실화를 강조하면서 ‘형법을 통한 것보다 과태료 같은 것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또 “쿠팡 같은 경우도 형법보다 과태료 조치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예시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국보다 제재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 발생 시 1인당 배상액을 20달러(약 3만 원)에서 많게는 1000달러(약 150만 원)까지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옵트아웃’ 방식의 집단소송을 통해 피해자가 자동으로 소송에 참여하게 된다. 김익태 CIL 외국법자문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는 “쿠팡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집단소송감”이라며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대부분 소송에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쿠팡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에서 승소한다면 쿠팡이 지불해야 할 배상액은 최소 6억7000만 달러(약 9800억 원)에서 최대 337억 달러(약 49조 원)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쿠팡 상대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나왔다. 한국 법무법인 대륜의 미국 법인인 로펌 SJKP는 8일(현지 시간) 맨해튼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욕 연방법원에 쿠팡 미국 본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국일 대륜 경영대표는 “한국에서의 소송이 소비자 피해 배상에 집중한다면 미국에서는 상장사의 지배구조 실패와 공시의무 위반을 다루는 소송이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 진행 중인 소송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날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 침입, 비밀누설 등 혐의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정부, 쿠팡 강제조사 칼 빼들어… 與는 ‘매출 10%’ 과징금 추진


[쿠팡 美법인에 집단소송]
대통령실 “李 결과물 도출 의지 강력”… 與, 과징금 상한 매출 3%→10% 강화
美 집단소송, 피해 가능성 전원 대상… 과징금도 행위 중대성 따라 ‘무한대’

이재명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이에 따른 피해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 조사를 통한 과태료 부과 필요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수사는 강제수사권이 있지만 조사는 강제조사권이 발휘되기 힘들고 자의적인 조사권인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과태료 부과가 어려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강제조사권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주병기 공정위원장에게도 강제조사 권한이 있는지, 공정위 조사가 현실성이 있는 방안인지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대통령은 경제적 불법 행위를 근절하려면 형법에 따른 처벌보다 거액의 과태료가 효과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날 발언은 그 선결 조건으로 공정위 등 정부기관에 피조사자의 동의 없이도 강제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쿠팡의 행태에 대해 칼을 빼든 만큼 반드시 결과물을 내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며 “구체적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했다.

● 최대 과징금 매출액의 10%로 추진

더불어민주당은 법 개정에 나섰다. 이날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시 기업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쿠팡의 경우 지난해 매출 41조 원을 기준으로 하면 최대 약 4조1000억 원까지 과징금을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법이 개정되더라도 시행 이후 발생한 사건부터 적용하게 돼 이번 쿠팡 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해킹으로 인한 손해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쿠팡의 면책조항이 무효라는 주장도 나왔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이용약관에 이런 조항을 추가했다. 이에 대해 9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약관규제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사업자가 법률상 부담해야 할 책임을 약관으로 배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의미다.

● 미국은 과징금 상한선 없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과징금 상한선이 없는 미국의 제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와 보안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처럼 ‘관련 매출의 3%’ 상한선이 없다. 위반 건수와 고의성, 재발 여부, 은폐 시도 등 행위의 중대성에 따라 무한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2016년 메타(옛 페이스북)는 87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7억2500만 달러(약 1조673억 원)를 냈다. 여기에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50억 달러(약 6조5000억 원)의 벌금까지 부과받았다. 유럽연합(EU)도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에 따라 보안 사고 발생 시 연매출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메타는 유럽 사용자 정보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 적발돼 2023년 과징금으로 12억 유로(약 2조560억 원)를 부과받았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제재 외에도 집단소송이 적극 작동하고 있다. 집단소송은 피해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 전원이 자동으로 소송 대상에 포함돼 기업이 감당해야 할 배상 규모가 커진다.

미국 내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2017년 신용평가사 에퀴팩스는 1억47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자 고객들에게 합의금으로 7억 달러(약 1조304억 원)를, 2021년 통신사 T모바일은 7600만 명에게 합의금 3억5000만 달러(약 5132억7500만 원)를 지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기업 책임이 낮게 책정되다 보니 ‘사고가 나도 과징금 내고 끝내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대규모 플랫폼 기업의 반복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구조적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팡#개인정보 유출#강제조사권#개인정보보호법#과징금#미국 제재#집단소송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