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미래 금융 인프라” vs “자본유출 통로 악용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크립토 혁신 갈라파고스 된 한국] 〈5〉 ‘원화 스테이블코인’ 찬반 논란
스테이블코인 대세 인정 분위기 속
“발행 미루면 세계금융서 뒤처져”… “코인런땐 금융시스템 타격 줄 것”
도입 놓고 ‘속도론 vs 신중론’ 팽팽

“경제의 혈맥인 데이터가 흐를 미래 금융 인프라다.”(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

“자본이 유출될 통로가 될 수 있다.”(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정책국장)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기와 발행 주체 등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 관련 법안이 통과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거스르기 힘든 추세라는 점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조속히 도입하고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속도론’과, 여러 불확실성을 충분히 고려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고 발행 주체도 까다롭게 규제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상자산의 일종인 스테이블코인은 안정된(stable) 코인(coin)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법정 화폐와 연동해 기존 가상자산의 단점인 변동성을 크게 줄여 국경 간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외화 유출뿐 아니라 금융시장 변동성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 국내 달러 스테이블코인 일평균 거래액 12조 원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실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한 달간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고팍스)에서 3개의 달러 스테이블코인(테더, 서클, 스카이달러)은 하루 평균 12조1647억 원어치씩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 ‘친(親)가상자산 정책’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해 11월 이후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0조 원 이상을 줄곧 상회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 한은 등 경제 유관기관들도 스테이블코인 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미래 금융의 ‘인프라’라는 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효율화, 거래 비용 절감 등의 이점을 넘어 블록체인 생태계를 확산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얘기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상자산, 토큰증권 등이 블록체인에서 제대로 유통되기 위해서는 지급결제 수단이 필요하며 스테이블코인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며 “한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미루면 세계 금융질서에서 뒤처지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해시드의 김 대표는 “신뢰할 수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없다면 경제의 혈맥이라 할 수 있는 (결제 정보 등) 데이터가 해외 인프라에서 움직이게 된다”라며 “거래가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인공지능(AI) 생태계가 해외 시스템에 종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아시아권에서 원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전 국정기획위원회 자문위원)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생태계에서 원화의 통화 주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해외에서 ‘K콘텐츠’나 ‘K게임’을 즐기는 이용자가 원화 코인으로 결제하도록 유도하면 ‘디지털 한류 경제권’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 “금융시장 변동성 심화시킬 수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에 앞서 다양한 변수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주권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많다. BIS의 신 국장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ESWC)에서 “자국 통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로 표시된 가상자산과의 맞교환을 촉진시켜 오히려 자본유출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며 “글로벌 경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역할 때문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달러 화폐에 대한 수요처럼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쉽게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19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 기반이며 모든 사람이 달러를 가지려 하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많은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줄어들 것이냐에 관해 (한은은) 회의적으로 본다”고 했다.

중장기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가 금융시장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국채, 예금 등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코인 발행량이 많아질수록 안전자산 보유량도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인런(coin-run·투자자들이 코인을 대량 매도하는 현상)’이 펼쳐지면 코인 발행사가 채권을 투매하게 돼(채권 가격은 폭락)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이것이 금융 시스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는 달러와 원화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두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급격히 증가하거나 정반대로 단기간에 환매 수요가 몰리면 국채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고,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처럼 기존의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화폐 간의 연계성이 높아지는 것 자체가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코인런#스테이블코인#이재명 대통령#원화 스테이블코인#블록체인#달러 스테이블코인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