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구리에 대한 ‘50%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자 구리 가격이 56년 만의 기록적인 급등세를 보이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정보기술(IT) 전력 기기부터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로 꼽히는 구리값이 요동치는데다 당장 대미 수출 벽이 높아진 한국 기업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상 최고가 찍은 구리 가격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이날 구리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3.12% 뛴 파운드당 5.6855달러에 장을 마쳤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종가는 사상 최고치이고, 종가 기준 하루 상승률은 196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장 중 한때는 약 17% 상승한 파운드당 5.89달러까지 치솟은 바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 50% 관세 방침을 밝힌 탓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1일에 발효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구리 관세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지만 발표 시기가 갑작스러웠고, 관세율도 시장 예상보다 높았다”고 분석했다.
구리는 전기, 건설, IT 분야 핵심 재료다. 철과 알루미늄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금속으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구리가 필수 자원임에도 중국의 제련 독점으로 인해 국가안보 위협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올해 2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미국의 구리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올 4월 미국이 한국산 구리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내 소비자 물가 상승과 첨단 산업 성장 저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국 상무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얇은 구리판 동박 등에 고관세가 매겨지면 미국 내 한국 배터리 업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산 구리 제품이 미국 배터리 생산망과 연결돼 미국에 약 465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구리 수출액은 약 5억7000만 달러로 미국 전체 구리 수입량의 약 3%에 불과하다는 점도 강조했지만 한국이 구리 50% 관세를 면하게 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긴장하는 전선, 전기차, 동박 업체들
당장 국내 자동차 전선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도 우려하고 있다. LS전선은 올해 4월 약 1조 원을 투자해 미국 내 최대 규모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전선에는 일반적으로 구리가 많이 사용되기에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차에도 내연기관차 비해 2~4배 이상의 구리가 사용되고, 구리를 얇게 펴 만드는 이차전지의 원료인 동박 생산 업체도 영향권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전기차 부품은 연 단위 계약을 하기에 단기적인 영향은 적지만 향후 재계약에서 차 부품 가격이 상승하면 완성차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한국비철금속협회 본부장은 “중국에서 수요가 늘어나 가뜩이나 구리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실제 관세가 부과되면 연말까지 급등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업계와 소통하며 대응책을 고심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세율이 25% 정도만 돼도 품질 경쟁력을 통해 극복해보려 할텐데 50%의 관세율은 대미 수출 자체가 어려워지는 수준”이라며 “언제 관세가 어느 범위까지 부과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탓에 일단 구체적인 발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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