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피해 아직 없는데”…SKT 집단소송 ‘무차별 확산’ 논란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6월 10일 14시 22분


코멘트

SKT 집단소송 모집 로펌만 10여곳
비슷한 집단소송 대부분 ‘원고 패소’ 마무리
변호사 시장 포화탓…소비자 피해 우려도
기업들도 ‘집단소송 확산’ 가능성 주시

22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2025.04.22. 뉴시스
22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2025.04.22. 뉴시스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관련한 집단소송 참여자가 17만명을 넘은 가운데 일부 로펌들의 소송 참여자 모집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들린다.

일각에서는 이번 집단소송이 소비자 보호 차원보다는 일부 로펌의 이득만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SK텔레콤 집단소송 모집 로펌만 10여곳 달해

10일 재계 및 법조계 등에 따르면 SK텔레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은 대형 로펌을 비롯해 중소형 로펌, 개인 변호사까지 가세하며 현재 10여곳에서 소송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지금까지 D법무법인은 14만명 이상을 모으며 가장 많은 소송 참여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다른 N법무법인과 R법무법인도 각각 2만명, 1만명을 소송 참여자로 모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법무법인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를 SK텔레콤 가입자 2600만명으로 환산한다면 단순 소송 가액만 26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법조계 전문가들은 과거 판례로 볼 때 이같은 손해배상 청구가 실제 재판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단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법적으로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실제 재산상 피해가 발생해야 하고 ▲기업 측의 고의 또는 과실도 입증돼야 한다.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태는 아직까지 고객들의 구체적인 재산 피해는 보고된 바 없다. 재산상 피해가 없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이 경우도 사업자 고의나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

단 SK텔레콤이 해킹 당시 요구되는 보안 조치를 취했고, 해킹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면 기업 과실로 인한 책임은 묻기 어렵다는 게 지금까지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실제 2012년 당시 KT가 해킹으로 870만명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겪었고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이 소송은 최종 판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대법원은 “KT가 해킹을 막기 위해 필요한 보호조치를 취한 점이 인정된다”며 “해킹 피해 발생만으로는 기업 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최종적으로 해당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기각됐다.

이보다 앞선 2011년에는 네이트와 싸이월드가 해킹돼 각각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2008년에는 옥션 고객 1800만명의 개인정보가 각각 유출돼 손해배상 소송으로 확대됐지만 이 역시 기업 과실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원고 패소’로 마무리됐다.

◆변호사 시장 포화…과열 양상에 소비자 피해 우려

일각에서는 정부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고,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법무법인들이 과도하게 소송 참여 홍보에 나서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기대만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행 변호사법 제23조는 사실을 과장해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거나 업무수행 결과에 대해 부당한 기대를 가지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단적으로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관련해 배상 여부는 정부 조사 결과와 법원 판단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부 법무법인이나 변호사들이 마치 100만원까지 배상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안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홍보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법률 서비스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 옥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당시 한 변호사가 인터넷 카페에서 10만명에 달하는 소송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착수금만 받은 뒤 실제 소송 업무는 다른 변호사들에게 떠넘겼다가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당시 소송을 믿고 참여한 소비자들은 시간과 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하며 제2의 피해를 입었다는 평이다.

법조계는 이처럼 기업들을 상대로 무리하게 집단소송 모집에 나서는 현상은 로스쿨 제도 시행 이후 변호사수가 급증하며 소송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5월말 기준 등록 변호사 수는 총 4만397명에 달한다.

변호사 시장이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며 일부 변호사들은 전문 분야보다는 광고 효과를 노리고 사회적 이목을 끌 수 있는 소송에만 뛰어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부 법무법인들이 SK텔레콤 집단소송에서 성공보수 외에 ‘소송 수행에 필요한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11만원까지 착수금을 요구하는 것도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K텔레콤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대부분 법무법인들이 6개월~1년 안에 소송이 마무리될 것처럼 밝히지만 이는 1심 판결에 한정된 것으로 실제 재판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소 5년~10년까지 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

◆기업들 ‘집단소송 확산’ 여부 예의 주시

SK텔레콤 집단소송은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도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소비자와 고객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질 경우 어떤 기업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직면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집단소송으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번 집단소송에 휘말리면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이중·삼중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고민도 들린다.

집단소송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고,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절반의 승리’에 그칠 수 있어서다.

실제 과거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집단소송 사태에서 사법부는 기업 책임이 없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지만 소송 내내 기업들은 부정적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재계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개인과 기업,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큰 만큼 더 신중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