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경영 전략에 통합하는 과정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기업이 혁신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할 때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시장 요구나 경쟁사의 가격 전략과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는 곧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지속가능성 지향 혁신(SOI·Sustainability-Oriented Innovation)’이다.
SOI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가치까지 함께 창출하는 조직의 역량을 의미한다. 단순한 친환경 제품 개발을 넘어서 조직문화, 업무수행 방식, 의사결정 구조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단기적 개선이 아닌 전략적 전환이 요구된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 연구팀은 SOI와 조직문화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산업과 국가의 고위 관리자 1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탐색적 요인 분석과 군집 분석을 통해 조직문화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합리적 가치 중심 문화 △발전적 가치 중심 문화 △균형 잡힌 조직문화 △계층적 조직문화가 그것이다.
조사 결과 ‘합리적 가치 중심 문화’를 가진 기업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개방성과 위험 수용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이들은 명확한 목표와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며 필요할 때만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발전적 가치 중심 문화’는 개방성, 팀워크, 기술 수용성이 높았고 구성원에게 자율성과 성장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들은 최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직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도록 장려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추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런 개방성과 협업이 SOI 성과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균형 잡힌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특허 창출 능력이 뛰어나고,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을 모두 추구하는 데 높은 성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유럽에 있는 중소 제조기업으로 유연성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경쟁사 대비 지속가능성 전략과 비용 절감 성과 모두에서 우위를 보였다. 실제 응답자의 다수는 환경적·사회적 기준을 자사의 핵심 전략에 이미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계층적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들은 철저한 통제와 사전 계획, 예측 가능성에 기반해 운영되지만 변화와 혁신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내부 프로세스를 엄격히 관리하면서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는 경향이 강했으며 SOI에 대한 성과 평가도 대체로 낮았다.
이번 연구는 SOI 성과가 단순히 제품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문화와 가치체계에 깊이 뿌리내려야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내고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만 지속 가능한 혁신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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