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에 간행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 농업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책으로 수확량 증대를 위한 체계적인 농업기술의 정립이 최초로 시도됐다. 당시 세종은 농사가 잘되는 지역의 경험이 풍부한 농민들에게 자문해 정리하도록 명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는 최적의 농법을 찾고자 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농업 지식 전달의 태동이라 할 수 있는 이 방식은 오늘날 디지털 농업을 이루는 혁신적 접근법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서 농업의 패러다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환경 부담은 낮추는 정밀 농업 시대를 지나 정보통신기술(ICT)과 인프라를 접목해 농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스마트 농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는 생산, 유통, 소비에 관한 데이터가 농업 데이터 플랫폼에 수집되고 이를 분석해 도출된 데이터가 다시 영농 현장에 적용되는 디지털 농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디지털 농업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생산성 향상 그 이상을 뜻한다. 농업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농업은 농업 전 과정의 효율성 증대는 물론 농식품 가치사슬 전반에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한다. 탄소 배출 감소와 지속가능한 농업 경영 실현,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통한 품질 향상과 비용 절감, 농작업 자동화를 통한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의 불확실성 감소 등에 기여할 것이란 예측에서다.
네덜란드의 ‘LetsGrow’와 일본의 ‘WAGRI’ 같은 농업 데이터 플랫폼은 실시간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한 맞춤형 영농 정보를 제공하며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플랫폼은 농업인뿐만 아니라 연구자, 농업 컨설턴트, 스마트 농업 관련 개발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지식 공유의 장이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디지털 농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2023년 ‘농업과학기술정보법’을 제정하고 데이터 기반 맞춤형 과학기술 정보 플랫폼인 ‘ASTIS(애즈티스)’를 구축해 올해부터 확대 운영한다. 네덜란드나 일본에 비하면 시작 단계지만 우리나라 디지털 농업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농진청과 도 농업기술원, 156개의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농업과학 데이터의 수집·관리·활용 체계를 구축하고 기상재해와 병해충 대응, 수급 안정 지원과 특화 작목 중심의 지역 농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농업기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화성시 농업기술센터는 스마트팜 통합관제시스템을 구축해 지역 대표 작물인 포도 재배 농업인을 대상으로 기상·병해충 예측 등 최적의 생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의 농업기술 정보를 지원하고 있는 모범 사례다. 이처럼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농업 전주기 데이터 수집·관리의 체계화를 도모하고 농업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가능한 농업의 실현을 위해 현장의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데 모두가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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