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확산돼 인명과 산림 소실 등 큰 피해를 초래했다. 공식 조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피해 면적이 단일 산불로는 가장 크다고 한다. 이러한 산불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산불 상당수가 실화 또는 불법 소각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발생한 산불 2600건 중 실화, 소각 등에 의한 발생이 절반을 넘는다. 산불 철마다 TV 공익광고, 계도 캠페인, 단속을 집중적으로 진행해도 건수는 줄지 않는다. 심지어 산불 발생 지역 인근에서 며칠 후 다시 산불 신고가 접수되는 일도 있다. 사람들이 ‘하지 말라’라는 경고에도 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있다. 그 이론 중 몇 가지에 산불을 대입해 소개하면 우선 사람들은 먼 미래의 큰 이익·손실보다 당장의 작은 이익·손실에 가중치를 둔다. 불법 소각은 처리 비용 없이 쓰레기의 즉시 제거라는 ‘당장의 이익’을 제공하는 반면 산불 발생 위험이나 처벌 가능성은 ‘미래의 불확실한 손실’로 인식돼 당장의 편리함에 비해 크기가 작아진다. 여기에 ‘설마 나에게 일어나겠어?’라는 생각과 결합돼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다른 하나는 손실 회피 성향이다. 사람들은 이익과 손실이 같은 크기라면 이익의 기쁨보다는 손실에서 생기는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폐기물의 합법적 처리에 드는 시간, 노력, 비용을 ‘손실’로 인식하게 되며 이 손실을 피하고자 불법 소각을 택할 수 있다.
또 하나 ‘프레이밍 효과’이다. 동일한 문제라도 어떻게 ‘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불법 소각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고 단속을 거의 안 한다고 인식된다면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리와 행동 패턴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먼저 ‘올바른’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선택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절차 간소화와 비용 부담 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영농 폐기물 등의 수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인데 집중 수거 기간의 운영, 찾아가는 수거 서비스 등이 확대돼야 한다. 또 일정량까지는 무료로 수거하거나 폐기물 처리 프로그램 참여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아울러 ‘손실’에 대한 프레이밍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해 위험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 또 단속과 계도 활동의 실효성을 강화해 ‘처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불의 주요 원인인 불법 소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접근도 필요하다. 합법적인 행동은 쉽게 만들고, 불법적인 행동은 위험과 비용을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다양한 노력이 요구된다. 올봄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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