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HD현대 제공). ⓒ 뉴스1
“우수한 역량을 가진 한국 조선소와 협력하면 미 해군 함정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것이다.”
존 펠런 미국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를 둘러본 뒤 이같이 말했다. 정비 연한이 도래한 미 해군 함정의 정비를 국내 조선소에 사실상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함정 시장 선점을 위해 HD현대와 한화오션도 미 현지 조선소 인수, 전략적 협업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일 HD현대와 한화오션에 따르면 펠런 장관은 전날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를 직접 방문해 건조 시설을 둘러보고 양국 간 조선산업 협력 강화를 주문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펠런 장관과 동행하며 직접 조선소를 설명하고 자사의 건조 능력을 강조했다.
미국 해군성 존 펠란 장관(왼쪽 세 번째)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왼쪽 네 번째) 등 관계자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정비 중인 유콘함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한화오션 제공). ⓒ 뉴스1펠런 장관은 HD현대중공업의 이지스함 정조대왕함과 다산정약용함, 한화오션이 수행 중인 미 해군 함정 유콘함의 정비 현황 등을 직접 살펴봤다. 펠런 장관은 “미국 해군과 한국 해양 산업과의 관계는 선박 정비를 넘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양국 의지를 굳건히 받쳐주는 초석이다”며 “양국 간의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고 했다.
미 해군성 장관의 국내 조선소 방문은 지난해 카를로스 델 토로 전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그만큼 펠런 장관의 이번 국내 조선소 방문은 미국의 조선 산업 부활을 위해 한국 조선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중국과의 해양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미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가 시급한데, 미국의 조선산업 인프라는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의 선박 건조 능력은 미국의 232배다. 2017년 이후 중국은 순양함을 8척 만들었지만, 미국은 단 한 척도 만들지 못했다. 펠런 장관은 한국 방문 전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때마다 조선, 조선, 조선이라며 계속 강조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한국과 일본으로 가겠다고 하니 ‘훌륭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 함정 MRO 수요는 연간 20조 원에 이른다. 또 미 해군은 향후 30년간 함정 364척을 건조하기로 했다. 함정 건조 투입 비용만 1600조 원이다. 국내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국내 조선사도 이 같은 미국의 함정 건조 및 MRO 수요를 노리고 있다. HD현대는 지난달 7일 미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잉걸스와 선박 생산량 증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한화오션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데 이어 미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호주 오스탈 조선사에 지분을 투자했다. 이날 정 수석부회장은 “HD현대가 가진 최고의 기술력과 선박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산업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고 김 부회장 역시 “한화오션은 미 해군의 전략적 수요에 맞춰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조 체계를 완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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