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도시 뉴욕, 런던, 서울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5월 25일 0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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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소득 수준 높은 인재와 혁신기업 끊임없이 몰려들어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도시 뉴욕. GETTYIMAGES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도시 뉴욕. GETTYIMAGES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대한민국 서울 같은 거대 도시의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값비싼 거대 도시에서 대거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은 영향이다. 하지만 2020년 가을부터 글로벌 거대 도시의 주택 가격이 급등하며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잃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시장금리가 이전보다 높아진 후에도 거대 도시의 부동산 붐은 꺾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도심 부동산 가격 급등
그렇다면 코로나19로 확산했던 재택근무는 왜 사라졌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무실 근무는 약간의 결점이 있어도 여전히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2020년 발표된 재택근무에 대한 초기 연구는 온라인 소매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재택근무자의 시간당 통화 수가 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23년 5월 발표된 논문 개정판에 따르면 재택근무자들의 생산성은 약 4%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자들이 더 정확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결론이 뒤바뀐 것이다. 재택근무 직원들은 전화에 응답하는 횟수가 줄었을 뿐 아니라 상호작용의 질도 떨어져 고객을 더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 데이터 입력 업무를 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비슷했다. 재택근무자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자보다 18% 낮았던 것이다. 아시아에 위치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재택근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재택근무 근로자의 생산성 수준이 사무실 근무자와 비교해 19%나 낮았다.

따라서 기업들이 2021년을 고비로 재택근무를 폐지하거나 하이브리드 근무, 즉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재택근무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업과 협상할 능력을 갖춘 뛰어난 인재는 재택근무를 선호하기에 모든 기업이 100% 사무실 근무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거대 도시 비관론자들의 생각과 달리 재택근무의 중요성은 예상보다 훨씬 떨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재택근무의 생산성은 왜 낮게 나온 것일까. 연구자나 정책 입안자, 조직 설계자 등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동료와 함께하는 밀도 높은 접촉, 그리고 혼자 일할 시간 등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례를 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종류의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래프 참조). 1970년에는 제조업 종사자가 1785만 명인 반면, 전문직 종사자(Professional and Business Services)는 529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시작된 IT 혁명으로 선진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가장 많이 생겨나고 있다. 2000년에는 제조업 종사자 1727만 명, 전문직 종사자 1673만 명으로 변화했고, 2024년에는 각각 1282만 명과 2262만 명으로 역전됐다.

자료 | 미국 노동통계국,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FRED), 프리즘투자자문
자료 | 미국 노동통계국,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FRED), 프리즘투자자문
IT 혁명 이후 급증한 전문직 종사자
IT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중간 정도 기술 수준을 가진 사람의 일자리는 가파르게 줄었고, 근로자는 살아남으려면 한층 혁신적이어야 했다. 업무 성격이 바뀌면서 더 많은 사람, 특히 정보통신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대면 소통이 필요한 어렵고 협력적인 일을 하게 됐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비대면 상황에서는 놓칠 수밖에 없는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시간 대면 소통 과정에서 제공되는 추가적인 힌트나 암시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필자 같은 경제 전문가도 큰 변화 앞에 놓이기는 마찬가지다. 1970년대 경제학자는 기본적으로 논문을 혼자 썼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명이 하나의 논문을 공동으로 쓰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다. 경제 논문을 작성하는 데 예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와 통계 분석 활용이 필요하고 이런 요건을 채우려면 논문 작성자는 더 넓은 범위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능력 있는 동료, 즉 교수 및 박사후 연구원을 만날 수 있는 명문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욱 탁월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이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거대 도시는 앞으로도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번영할 전망이다. 따라서 거대 도시의 주택 가격은 소득 수준이 높은 인재, 더 나아가 그들에게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혁신기업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만큼 크게 하락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0호에 실렸습니다〉


#코로나19#재택근무#생산성#거대 도시#부동산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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