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전쟁 시대, 군사력의 본질이 바뀌었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7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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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트로이목마 작전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컨테이너 트럭에 숨은 채 러시아로 반입된 우크라이나의 자폭 드론 117대가 6월 1일 러시아 공군기지 4곳에 날아들었죠. 우크라이나 주장으론 41대, 전문가 분석으론 12대의 러시아 전투기가 파괴됐습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을 떠올리게 하는 성공적인 기습공격이었죠.

이번 공격이 러-우 전쟁의 판도를 바꿀진 두고 봐야겠지만요. 이젠 ‘드론전쟁 시대’라는 것만은 확실히 일깨워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은 드론의 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소형 드론을 날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연간 수백만 대 드론이 싸우는 드론 전쟁이 되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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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 조이스틱, 자폭드론
윙~. 거대 파리의 날갯짓을 연상케 하는 이 소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입니다. 적군의 드론이 그들을 발견했거나 곧 공격할 거란 뜻이기 때문이죠. 드론을 향해 항복하는 군인들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전선에서 포로로 붙잡힌 많은 병사들이 포로가 되기 전까지 적군 병사를 한명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얘기한다죠. 이 전쟁에서 군인들은 사람이 아닌 드론과 싸우고 있습니다.

전쟁이 처음 일어났던 2022년 초만 해도 우크라이나 최전선은 귀청이 터질 듯한 요란한 포격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진군하는 러시아 탱크와 이를 막는 대전차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고요.

하지만 3년 만에 전쟁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전선에선 병사들이 삽질로 파낸 참호 안에 웅크리고 있죠. 마치 100여 년 전 지긋지긋한 참호전으로 유명했던 1차 세계대전을 연상케하는 모습입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5월 23일 한 벙커에서 FPV 드론을 조종해 러시아 진지를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언론에 제공한 사진이다. AP 뉴시스
동시에 그와 좀 떨어진 어느 벙커에선 병사가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능숙하게 조이스틱 컨트롤러를 조작합니다. 마치 게이머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자폭 드론을 조종하는 암살자들이죠. 목표를 향해 돌진한 드론이 펑. 화면이 흑백으로 지지직거리면 임무완수입니다. 병사는 다시 새 드론에 폭탄을 실어(정확히는 케이블타이로 묶어) 날려 보내고요. NATO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피에르 방디에르는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죠. “이 전쟁은 1차 세계대전과 3차 세계대전이 섞였습니다.“

이건 드론전쟁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사상자의 약 70%는 드론으로 인한 겁니다. 전차·곡사포·박격포 등 모든 전통 무기를 합친 것보다 드론이 훨씬 더 많은 군인을 사살하고 있죠.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마치 하늘에 천 명의 저격수가 떠 있는 느낌”이라고 전합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투에 투입한 드론 수는 각각 150만대와 140만대(추정). 3년 전 전쟁 초기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입니다. 2022년 전쟁 직전 러시아가 보유한 군용 드론은 고작 2000대 정도였으니까요.

막느냐 뚫느냐
그럼, 왜 드론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렴한 데다 단기간 대량생산이 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이죠.
우크라이나군의 FPV 드론이 폭탄물을 실은 채 발사 준비 중이다. AP 뉴시스
군사용 드론은 그 종류와 크기가 매우 다양한데요.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작고 저렴한 ‘1인칭 시점(FPV) 드론’입니다. 드론이 찍은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며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이죠. 원래는 레이싱이나 영상제작에 주로 사용되는데요. 전쟁 초기, 포병 전력에서 크게 열세였던 우크라이나는 이런 취미용 드론을 재빨리 개조해 무기화했습니다. 케이블 타이로 폭발물만 묶으면 바로 살상 무기가 됐죠. 작아서 적의 방공시스템에 잘 걸리지 않으면서도 높은 정밀도로 적을 타격할 수 있고요.

특히 가장 인상적인 건 가격. 한대당 제작비용이 400달러(55만원) 정도입니다.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 1발당 8만 달러(약 1억1000만원)니까, 그 200분의 1인 거죠. 바로 이런 소형 드론이 이번에 수백억원짜리 러시아 전투기들을 날려버린 겁니다.

2022년 5개였던 드론 제조기업이 이제 500개 넘을 정도로 우크라이나는 드론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죠. 우크라이나 최대 드론 생산업체인 스카이폴(Skyfall)은 소형 드론을 하루 4000개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직은 모터·영상 송신기 등 중국산 부품에 일부 의존하지만, 자체 부품을 늘려가는 추세죠.
우크라이나 기업 스카이폴이 생산하는 정밀타격용 대형 드론 ‘뱀파이어’. 러시아에선 이 드론을 동화 속 사악한 마녀 이름을 따서 ‘바바야가(Baba-Yaga)’라고 부른다. 스카이폴 홈페이지
날아오는 드론을 요격하는 방공망이 있지 않냐고요. 물론 레이저 반사 면적이 큰 정찰용 대형드론은 격추가 비교적 쉬운 편이긴 한데요. 대신 방공망 가동엔 돈이 꽤 많이 들죠. 아마 드론값보다 요격 비용이 더 들 겁니다.

또 작고 수시로 떼 지어 나타나는 소형 1인칭 시점 드론은 격추하기도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드론 방어를 위해 강력한 방해 신호를 방출하는 ‘재밍’ 기술을 이용하죠. 드론과 조종사 간 무선통신을 끊어버려서 경로에서 이탈시키는 건데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런 재밍으로 한 달에 약 1만대의 드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전파 교란이 먹히지 않는 신종 드론이 점점 늘고 가는데요. 일단 방해전파를 피해 주파수 대역을 빠르게 전환하는 드론이 나왔고요. 또 러시아군은 지난해부터 ‘광섬유 드론’을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무선 통신 대신 광섬유를 이용한 유선 통신으로 작동하는 드론인데요. 마치 연줄에 매달린 연처럼, 드론이 몸체에 가느다란 광섬유를 매단 채 10㎞ 넘게 날아가는 거죠. 통신선이 중간에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 의외로 나무 사이도 잘 통과하면서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군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 모두 드론 기술 면에서 놀라운 속도로 진화 중입니다.
1월 29일 우크라이나산 FPV 광섬유 드론이 비행하고 있다. 광섬유 통신선을 매단 채 날아가는 광섬유 드론은 2024년 러시아군이 전투에 도입했고, 이제 우크라이나군도 자체 광섬유 드론을 생산한다. 광섬유 드론은 방해전파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광섬유 무게 탓에 멀리 보내기가 쉽지 않다. AP 뉴시스


군사력의 본질이 변했다
드론은 전쟁의 모습을 확 바꿔놨습니다. 대형 전차나 장갑차는 너무 많은 전자신호를 방출하기 때문에 전투 드론의 쉬운 먹잇감이죠. 1인칭 시점 드론은 전차의 가장 취약한 부분(열린 해치, 엔진, 포탑에 저장된 탄약)을 정밀하게 타격해 치명상을 입힙니다.

그래서 이제 러시아군은 장갑차 대신 오토바이나 전동 스쿠터, 때론 도보로 이동하곤 합니다. 병사들은 배낭에 휴대용 재밍 시스템을 달고 다니고요. 2차 대전 이후 이어졌던 ‘탱크의 시대’가 저물었단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 전 총사령관(2021~2024년) 발레리 잘루즈니는 이에 대해 “군사력의 본질은 이미 변했다”고 말합니다. “무인 시스템과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전통적인 무기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승리는 이제 기술로 적을 앞지르는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2024년 6월 14일, 65여단 소속 우크라이나 군인이 우크라이나 자포리지아 지역 최전선에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AP 뉴시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을 포함한 전 세계 군사 전문가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신기술은 단연 AI(인공지능)입니다. AI와 드론이 결합한 ‘자율주행 킬러드론’의 시대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열리기 시작했는데요.

아직은 인간 조종사의 조종과 승인이 필요한 형태입니다. 드론이 스스로 몇시간씩 날다가 표적을 발견하면 알아서 적을 파괴하는 임무까지 수행하는, 그런 일은 현재까진 없죠. 대신 조종사가 원격으로 드론을 조종하다가 목표물, 예를 들어 오토바이 탄 군인을 발견하면 ‘저게 목표물’이라고 찍어줍니다. 그럼 카메라 영상을 읽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AI 드론이 그 목표물을 알아서 추적하죠.

자율주행 킬러드론은 드론전쟁 판도를 흔들 수 있습니다. 현재 드론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종사 인력이죠. 1인칭 시점 드론으로 목표물 정확히 타격하려면 고도로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한데요. AI 드론은 조종사가 일일이 비행 각도를 미세하게 조종해 주지 않아도 목표물을 놓치지 않습니다. 광학센서와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날기 때문에 GPS 방해전파에도 끄떡없고요.

AI 자율주행 킬러드론의 등장?
이미 많은 기업이 군사용 AI 자율주행 드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오픈AI와 협력하는 미국의 AI 방위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 Industries)이 대표적이죠. 안두릴은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무인 무기를 생산합니다. 군사용 소형 AI 드론부터, 조종사가 필요 없는 무인 자율 전투기(퓨리)와 무인 잠수함(다이브XL)까지, 영역이 광범위하고요. 또 이를 지휘할 수 있는 AI 기반 플랫폼(Lattice)도 함께 공급합니다.

‘현실판 스타크 인더스트리(아이언맨의 회사)’로 불리는 안두릴은 이제 기업가치 280억 달러를 넘볼 정도로 커졌는데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출신인 안두릴 창업자 파머 러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자율성은 강력합니다. 지금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무기 체계가 너무나 많아요. 한 사람이 100대의 항공기를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모든 항공기에 조종사가 한 명씩 있는 것보다 훨씬 쉽죠. 그렇게 되면 미국인의 생명이 훨씬 덜 위험해질 것입니다.”
안두릴의 군사용 소형 자율주행 드론 ‘볼트M’. AI 기술 덕분에 숙련된 조종사 없이도 목표물을 쫓을 수 있다고 안두릴 측은 설명한다. 안두릴 홈페이지
안두릴의 군사용 소형 자율주행 드론 ‘볼트M’. AI 기술 덕분에 숙련된 조종사 없이도 목표물을 쫓을 수 있다고 안두릴 측은 설명한다. 안두릴 홈페이지
그런데 AI 기술을 통해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전투형 드론의 등장. 이거 좀 으스스하지 않나요. 만약 알아서 표적을 식별하고 조준·공격까지 할 수 있는, 즉 ‘적을 죽이는 법을 배운’ 드론이 전투에 투입된다면? 그런 치명적인 AI 드론이 저렴하기까지 해서 한 번에 수천, 수만 대를 띄울 수 있게 된다면?

모든 전쟁은 끔찍하지만, 인간의 개입 없이 누군가를 죽일지 말지가 결정되는 전쟁은 더 디스토피아적인데요. 그래서 이에 대한 유엔 차원의 규제를 주장하는 ‘스톱킬러로봇(Stop Killer Robots)’ 같은 단체도 있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역시 공격용 자율무기 시스템에 대해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고 말했고요.

하지만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가를 입증해버린 드론전쟁의 기술 진화를 과연 주요국이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요. ‘스트롱맨’이 대세인 이 시대에 그런 자제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파머 러키 안두릴 창업자는 킬러로봇 비판에 대해 이렇게 반박합니다. “좋아요, NATO가 물총과 새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쓸까요?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건 미국과 동맹국들이 적을 위협하는 힘의 방어막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By. 딥다이브

무인 항공기, 즉 드론이 미래 전쟁의 중심이 될 거라는 예측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된 건 드론 중에서도 특히 소형드론이 의외로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단 점입니다. 소형드론의 진화가 무서운 이유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수백억원짜리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지면서 이 전쟁은 ‘드론 전쟁’이 되었습니다.

-수십만원에 불과한 취미용 ‘1인칭 시점 드론’이 드론전쟁의 보병 역할을 합니다. 헤드셋을 쓴 조종사가 조이스틱으로 원격 조종해 자폭공격을 하죠. 이를 피하기 위해 군인들은 탱크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거나, 배낭에 휴대용 재밍 시스템을 달고 다닙니다.

-전투용 드론은 갈수록 진화합니다. 방해전파를 무력화하는 유선통신의 ‘광섬유 드론’이 등장했고요.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 없는 AI 자율주행 드론도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인간의 승인 없인 드론이 공격할 수 없지만, 곧 스스로 알아서 표적을 식별해서 공격하는 드론도 나올 겁니다.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무인 무기의 등장은 더이상 미래 얘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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