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직원이 20일 경기 화성시 포도 농가에서 봉사활동 중 포도 송이에 봉지를 씌우고 있다.
새벽부터 이어진 빗방울이 여간해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의 무더위를 식혀줄 줄기찬 빗줄기는 여름 문턱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기상청이 예고한 올해 장마의 시작, 그 첫날이었다. 하지만 포도나무 사이사이로 빗물을 맞고 있는 손길은 분주하기만 했다. 정성스런 손길에는 장맛비가 더 요란해지기전에 하나라도 보탬이 되기 위한 농협중앙회 임직원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일 경기도 화성시 일대 포도 농가에 반가운 ‘일꾼’들이 대거 투입됐다. 농협 임직원과 외부 봉사자를 합쳐 500명이 한날한시 국내 대표 포도 산지로 꼽히는 송산면·서신면·마도면에 모인 것이다. 이 일대 연면적은 3만3057㎡(약 1만평)로 축구장 4.5개와 맞먹는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라는 위치 때문에 인력 수급이 원활할 것 같지만 이곳도 여느 농촌처럼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투입된 인력은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8대 법인 소속 직원 250명과 함께 농가 주부모임을 비롯해 고향 주부모임, 사회봉사 명령자 등 250여 명으로 구성됐다. 지원 대상은 총 48곳,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재해 피해를 입은 취약 농가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20일 ‘범농협 한마음 농촌일손 집중지원의 날’을 맞아 경기도 화성 한 포도농가에서 일손돕기에 나서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도 포도농가 일손 돕기 작업에 동참했다. 현장에서 만난 강 회장은 “옛말에 부지깽이도 일어나 일손을 돕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6월은 1년 중 농촌에서 가장 바쁜 시기”라며 “농협 임직원들의 노력이 농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기간 포도 농가는 눈코 뜰 새 없다. 순치기와 알 솎기만 해도 한나절인데 온전한 포도송이에 봉지 씌우기까지 병행해야한다. 이날 취재진도 포도 농가에 상주하는 관리자와 숙달된 농협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일손을 보탰다.
취재진이 20일 화성 일손 돕기 현장에서 포도알 솎기를 하고 있는 모습. 6월 작업의 핵심은 순치기였다. 순치기를 하면 햇빛과 통풍이 좋아져 포도알이 고르게 익고 질병 발생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본다. 특히 나무 영양분이 포도알에 집중되기 때문에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병해충 피해를 줄이고 당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 작업이지만, 일손 부족으로 시기를 놓치면 수확량은 물론 가격까지 영향을 받는다.
농가 관리자가 포도알이 달려있는 가지(실도지)에서 뻗어나오는 순에서 가장 발달하고 건강한 순을 골라 2~3개로 추려야 한다고 일러줬지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작업 속도가 더뎠다.
농협중앙회 소속 직원들이 20일 경기도 화성 포도 농가에서 포도나무 순치기를 하고 있다.
순치기 후 말끔해진 포도 덩굴 사이로 연둣빛 포도송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흔히 보던 포도송이 형태가 제법 갖춰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탐스러운 송이 사이로 대부분 새끼손톱 크기의 포도알이 10개 내외로 달려있다. 여기엔 씨가 없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일일이 솎아 내 관리해야 한다. 손을 많이 타는 건 과감하게 잘라 버린다. 포도는 한 그루에 수백 송이가 열리지만, 이러한 세심한 손길을 거쳐야만 최상의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다. 솎기가 끝나면 봉지 씌우기로 작업을 마치는데 이날은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도중에 중단됐다.
잠시 작업을 멈춘 오전 11시 무렵, 간이 천막 아래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큰 대야에 담긴 탐스러운 수박이 잘게 잘려 테이블 위에 놓였다. 비를 피해 모여든 농협 직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봉사활동의 피로를 달콤한 수박 한 입으로 달랬다. 사람들의 옷에는 땀과 빗물이 뒤섞여 흘렀지만 그 속에선 ‘함께하는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행사는 오후 4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각자 밀린 업무를 뒤로한 채 이날만큼은 온종일 진흙투성이의 성실한 일꾼으로 하루를 보냈다.
‘범농협 한마음 농촌일손 집중지원의 날’ 행사는 단발성이 아닌, 범국민적 일손 돕기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의 일환이다. 각 지역본부·지부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외부 인력을 동원해 지역 단위로 1만5000명 규모의 동시다발적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에도 농협중앙회와 산하 계열사, 지역 농·축협 등 범농협 임직원 1만여 명이 농번기 일손 돕기를 실시했다.
이처럼 농협이 대대적으로 일손 돕기에 나서는 이유는 열악한 농촌 환경 때문이다. 고령화는 물론, 인건비 상승, 청년농업인 감소 등으로 농촌의 구조적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김기태 농협중앙회 농촌지원부 팀장은 “농촌 지역이 현재 고령화가 너무 심각하고 젊은이들의 인구수가 감소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일손 돕기 캠페인을 통해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해소하고, 나아가 범국민적인 캠페인으로 유도하기 위한 범농협의 ESG 사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단 하루라도 일손 돕기가 절실하다. 이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최만진 진아농원 대표는 “농가 인구가 줄어들다보니 인건비 상승이 만만치 않다”며 “농협의 봉사활동은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노동력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일손 돕기 이후엔 농가 간담회를 열어 농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필요한 지원을 점검한다.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금융지원에도 반영하려는 것이다.
올해 농협은 영농인력 250만명 공급을 목표로 농촌인력중개센터를 320개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영농인력 지원 데이터 분석 시스템 운영 ▲법무부 협력 보라미 봉사단 영농인력 활용사업 ▲임직원 자율참여형 일손돕기 제도 등을 운영하며 영농인력 지원에 노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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