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치 일감 꽉 찼다”… AI 시대 전력 수요 폭증에 공장 풀가동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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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노믹스 2.0 美서 뛰는 한국기업들] 〈8〉HD현대 美 앨라배마 변압기 공장
15년 투자 끝에 美 선두업체 부상
대형 변압기 점유율 2년새 두 배로… 美 기업 리쇼어링에 수요 급증
공장 더 지어 생산량 늘릴 계획… 고숙련 인력 확보 위해 사회공헌도

‘NOW HIRING(채용 중)’.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도심에서 I-85번 고속도로 타고 앨라배마주로 향하는 길에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이 세운 커다란 구직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광고판 한쪽에는 ‘시간당 20달러’라는 임금 조건도 적혀 있다. 앨라배마주의 시간당 최저 임금이 8달러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이상이다. 미국 현지서 본 광고판은 HD현대일렉트릭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밀려드는 변압기 주문에 최저 임금의 두 배 이상을 주고서라도 인력을 수시 채용 중인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진출 국내 기업 중 가장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 ‘리쇼어링’으로 폭증하는 美 전력 기자재 수요

최근 방문한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있는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 건물 3개 층 높이(8m)의 육중한 변압기가 제조 공정 최종 단계인 낙뢰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변압기는 전기를 송수신할 때 전압을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다. 전력 손실을 줄이고 멀리 보내기 위한 기자재로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을 위한 필수 기자재다.

이 시험장에선 230kV(킬로볼트)급 변압기에 순간적으로 낙뢰 수준(550kV)의 전기 충격을 줘 변압기가 절연 상태를 유지하는지를 확인한다. HD현대일렉트릭의 낙뢰 시험장은 미국 내에서 최대 규모이며 이 정도 시설을 갖춘 곳도 소수에 그친다. 2011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HD현대일렉트릭은 15년간 지속적인 투자와 시장 개척 끝에 미국 내 변압기 시장 선두 업체로 올라섰다.

강진호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장(왼쪽)이 미국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154kV(킬로볼트)급 대형 변압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미국 내 대형 변압기 시장 점유율 15%를 달성하며 1위에 올랐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강진호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장(왼쪽)이 미국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154kV(킬로볼트)급 대형 변압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미국 내 대형 변압기 시장 점유율 15%를 달성하며 1위에 올랐다. HD현대일렉트릭 제공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공장은 몰려드는 주문에 납기를 맞추느라 2교대로 10시간 근무 체제를 유지하며 가동 중이다. 최근 2년 동안 법정 휴일을 제외하고 주말 포함 단 하루도 생산을 멈춘 적이 없다. 강진호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장은 “미국 시장 첫 진출 이후 변압기 누적 판매 기준 500대까지 10년이 걸렸다”며 “1000대 누적 판매 기록은 5년 만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돼 성장 속도가 두 배 빠르다”고 했다.

실제로 HD현대일렉트릭의 미국 내 60MVA(메가볼트암페어) 이상급 대형 변압기 시장 점유율은 2022년 7%에서 지난해 15%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 내 점유율 1위다. 미국 시장 성장은 회사 전체 실적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영업이익은 2022년 1330억 원에서 지난해 6690억 원으로 뛰었고 영업이익률은 6.3%에서 20.1%로 늘었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HD현대그룹 내 1위다. HD현대그룹 내 주력 회사인 HD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말 기준 영업이익률은 7.0%다.

2011년 미국 진출 이후 10년간 적자였던 HD현대일렉트릭은 2020년 들어 아마존, 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의 데이터 센터 운영, 인공지능(AI) 산업 활성화로 미국 내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 정책이 회사 실적에 날개를 달아줬다. 관세를 무기로 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내 생산 변압기 수요를 끌어올린 것이다. 기존의 미국 변압기 생산 업체가 인건비 등을 이유로 멕시코 등지로 생산시설을 이전했고 대형 변압기 생산 시설을 보유한 HD현대일렉트릭에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은 현재 4년 치 일감을 확보해 놨다. 지난해 7월 180억 원을 들여 총 60개의 변압기를 적재할 수 있는 보관장까지 구축했다. 현재 보관장에만 2000억 원 규모의 변압기 40여 개가 적재돼 있다. 2019년 11월에는 537억 원을 들여 생산시설을 증설해 연산 105대 규모를 완성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에 그치지 않고 1800억 원을 투자해 앨라배마 공장 수준의 생산시설을 미국에 새로 구축할 계획이다. 생산 능력이 기존 대비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 관계자는 “변압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생산시설을 미국에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현재와 같은 수요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 고숙련 인력 확보 전쟁

변압기 초기 공정인 권선 작업장에 들어서니 시끄러운 기계 소리 대신 구리 선을 감느라 집중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로자들은 설계도를 보며 나무로 된 원통형 구조물에 성인 새끼손가락 굵기의 구리 선을 한 줄씩 신중하게 감고 있었다. 변압기 용량에 따라 권선 간격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작업은 마치 예술품을 만드는 작업 같았다.

이 같은 세심한 작업 탓에 보조 임무를 넘어 주도적인 제작 업무를 맡기까지는 통상 2∼3년이라는 긴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까다로운 공정의 경우에는 7년까지도 걸린다. 권선 작업 공정의 책임자 지위에 있는 하비 페인 씨는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 법인 초기부터 함께한 경력 14년의 베테랑 근로자다. 건설 현장 노동자였던 페인 씨는 “미국 법인 설립 전 한국에서 6개월간 교육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개화하는 미국 내 전력 기자재 시장에서 회사의 경쟁력은 바로 페인 씨와 같은 고숙련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HD현대일렉트릭도 우수한 인력을 인근 지역 내에서 확보하기 위해 지역에 대한 사회 공헌 활동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강 법인장은 “현재 회사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우수 인력 충원, 고숙련 인력을 최대한 오래 확보하는 데 있다”며 “근로자의 숙련도를 쌓아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회사의 기본 전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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