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원화 스테이블코인, 달러 코인 환전해 자본 유출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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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경계 메시지
“불규칙 거래 탐지 가능한지도 의문”
정부-여권, 스테이블코인 도입 속도
한은, CBDC 실험 중단… 고민 심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제도권 편입 가능성이 높아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자본 유출입 규제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 중 하나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한은이 향후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공을 들였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까지 중단되자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1일(현지 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중앙은행 포럼’의 정책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최근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많은 핀테크 기업과 스테이블코인 지지자들이 한국 정부에 은행이 아닌 기관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규제되지 않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할 경우 달러 기반 코인으로의 환전이 촉진되고 이는 자본 유출입 규제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비판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불규칙한 거래를 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우리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에는 스테이블코인을 경계하는 한은의 입장이 담겨 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통화 시스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보편화할 경우 원화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도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에서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우 환율 변동성, 자본 유출입 확대 등 외환 관련 위험이 커지면서 금융 시스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은은 블록체인 관련 제도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탓에 기술적 오류가 발생하거나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 등 결제·운영 측면에서의 위험도 내재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권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5월 경제 유튜버들과의 대화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만들어놔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디지털 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해 스테이블코인의 운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대통령이 국내 최대 블록체인 전문투자사인 해시드 출신인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을 발탁한 것도 정부의 도입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로 인해 한은이 추진했던 CBDC 도입은 표류 중이다. 올해 4∼6월 7개 은행이 참가하는 CBDC 시범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 1차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은행권의 반발에 부딪혀 10월 2차 실험은 잠정 중단됐다. 한은이 상용화에 대한 장기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데다 7개 은행이 300억 원 안팎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래내역을 정부가 일일이 확인 가능한 CBDC는 이를 도입한 중국에서도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큰 흐름이기에 한은도 무분별하게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지 않도록 정부와 규정을 만드는 작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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