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를 발표한 지난달 27일 불과 반나절 만에 일부 시중은행 마이너스 통장(마통) 약정액이 800억 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 창구에서는 대출 상담에만 5시간 넘게 대기자가 속출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우리은행의 지난달 27일 마이너스 통장 약정액은 전날보다 795억 원 늘어난 35조126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5∼26일 증가 폭(49억 원)의 약 16배에 달한다. 약정액은 마이너스 통장 개설 시 대출자가 은행과 약정한 한도 금액이다. 마이너스 통장은 신용 대출로 취급돼 ‘연 소득 이내’ 한도 규제를 적용받는다.
마통에서 실행된 대출액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달 27일 시중은행 3곳(신한·하나·NH농협)의 마통 잔액은 24조7830억 원으로 전일 대비 161억 원 증가했다.
시중은행 마이너스 통장 약정액이 폭증한 배경엔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 규제 시행 전 “일단 마통을 최대한 뚫어놓자”고 판단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금융당국은 지난달 28일부터 신용 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규제를 발표했고 규제가 시작되기 전 급히 마이너스 통장 약정액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 대출 규제 발표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마이너스 통장이 막히기 전에 받아놓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공유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점과 달리 비대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반나절 안에 신용 대출이 가능하다”면서 “미리 한도를 늘려 두면 이후 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발 빠른 고객들의 수요가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정부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 규제로 인한 수익성 저하를 막기 위해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주담대 금리는 일부 인상해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신용대출 금리를 하향 조정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2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대표 신용대출 상품의 평균 금리는 3.86∼4.84%였다. 가계부채 관리 대책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달 말에는 같은 상품군의 평균 금리가 3.88∼4.86%대에 분포했었다.
대출 규제 발표 직후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는 대출 상담에만 5시간 대기자가 속출하는 등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집단대출을 취급하는 서울의 한 영업점은 “규제 당일에 전세퇴거자금 대출, 이주비 대출 등 세부적인 수준의 문의가 많아 대기가 길어지는 고객들의 불만이 컸다”고 했다.
혼선이 빚어지자 지난달 30일 금융당국은 “제도 시행 전인 6월 27일까지 계약금을 냈거나 은행 전산상 대출 신청 접수를 완료했다면 종전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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