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5성급 럭셔리 호텔 콘래드서울이 전략적 전환점을 맞았다. 힐튼의 최상위 브랜드 ‘콘래드’의 한국 대표격인 이 호텔은 최근 사무엘 피터(Samuel Peter)를 신임 총지배인으로 선임했다. 그는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20년 넘게 럭셔리 호텔을 운영해온 글로벌 호텔리어다. 혁신적인 운영 성과로 힐튼 본사로부터 인정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스위스 국적 사무엘 피터 신임 총지배인은 일본과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럭셔리 호텔을 운영하고 다양한 글로벌 행사 기획 경험을 두루 갖춘 베테랑이다. 어릴 적 스노우보드 선수로 활동하면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감각을 키운 피터 총지배인은 스위스 호스피탤리티대학 졸업 후 태국 방콕에서 첫 인턴십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에 뛰어들었다. 방콕에서 10년, 싱가포르에서 4년, 이후 최근까지 일본에서 근무했다. 문화적 감수성과 실행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다.
특히 힐튼 도쿄에서는 이미 90~100%의 객실 가동률을 자랑하던 호텔에 외부 수익모델을 도입해 연간 매출을 12배 이상 끌어올린 신화를 남겼다. 럭비월드컵 당시 호텔 외부에 고급 케이터링 서비스를 기획해 제공하며 호텔 운영의 물리적 한계를 넘었고 하루 3000명이 방문하는 F&B 공간을 6회전 이상 돌리는 등 내부 회전률과 외부 확장 모두에 성공했다. 이후 힐튼 히로시마 총지배인으로 자리를 옮겨 호텔 오프닝과 G7 정상회의 운영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성장기 진입한 5성급 호텔 시장, 지금이 ‘거점의 시간’
현재 국내 5성급 호텔 시장은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5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17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이와 함께 고급 숙박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5성급 호텔의 객실당 매출은 전년 대비 14.4% 상승했고 객실 점유율도 80%대를 회복하면서 구조적인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도 시장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부동산 서비스기업 존스랑라살(JLL)코리아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2030년까지 2800실 이상의 5성급 신규 객실이 예정돼 있어 향후 몇 년 내 고급 호텔 간 경쟁이 본격화될 것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기존 호텔들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 브랜드 재정비와 경험 중심 전략을 선제적으로 가동하며 다음 성장 국면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호텔 브랜드들에게 전략적 거점으로 주목받는다. 서울은 공항 접근성, 대중교통, 콘텐츠 산업, 내수 기반 소비력 등 다면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아시아 주요 도시 중에서도 고급 호텔 산업의 성장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동시에 시장은 양적인 확장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정체성과 고객 경험 설계를 중심으로 한 ‘질적 경쟁’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콘래드서울은 브랜드 전환과 고급화 전략을 실행할 적임자로 사무엘 피터를 선임한 것이다. 고객의 호텔 체류 시간을 늘리고 호텔을 감각적이고 목적지 중심으로 만들어내는 운영 능력, 브랜드 감도를 높이는 기획력, 그리고 내부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리더십이 지금의 고급 호텔 시장에서 요구되는 핵심 요소로 꼽히기 때문이다.
“호텔은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8일 콘래드서울에서 만난 그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의 어원부터 짚었다. 라틴어 ‘호스피탈리스(hospitalis)’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고,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돕는 행위를 뜻한다. 그는 “단어 자체가 병원(hospital)과도 연결돼 있지만 호텔에서의 호스피탈리티는 그 반대의 개념으로 작용한다. 즉, 병원은 가능한 빨리 나가고 싶은 공간이라면 호텔은 다시 머물고 싶고 또 오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연결하는 능력, 그리고 사람과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은 그가 말하는 호텔리어의 핵심 역량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공감과 정직성”이라며 “놀 땐 놀고, 일할 땐 집중하는 팀 분위기가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 팀을 만들기 위해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직원들이 회사가 가진 가치와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과 판단력을 키워주는 것이 총지배인의 역할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 각각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가장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콘래드서울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 위치한 434실 규모의 5성급 럭셔리 호텔이다. 고층 구조와 한강 전망, IFC몰과 연결된 복합문화공간 구조를 갖춘 이곳은 MICE 수요와 여가 목적 투숙이 공존하는 여의도라는 입지를 바탕으로 국내외 고객을 아우르고 있다.
이어 그는 여의도를 “서울 속 섬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마라톤이 취미라는 그는 시드니 풀코스 대회를 앞두고 여의도에서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샛강과 한강공원의 자연친화적 환경이 운동 인프라로 최적화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렇게 레저와 비즈니스, 콘텐츠가 공존하는 지역은 드물다”면서 “이 도심 속 섬이 비즈니스와 여가, 국제 행사, 공항과의 접근성을 고루 갖춘 독보적인 입지라는 점에서 콘래드서울의 잠재력을 높이 본다”고 덧붙였다.
사무엘 피터 총지배인이 제시하는 방향성은 ‘정적인 호텔에서 살아있는 브랜드로의 진화’다. 콘래드서울의 시그니처인 39m 높이의 나선형 계단, 고층 구조, 넓은 디럭스룸 등 하드웨어는 이미 최고 수준이지만 그는 “고객의 기억에 남는 건 결국 경험”이라고 말한다. “투숙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의 모든 접점에서 감각적인 경험이 쌓여야 한다. 고객이 처음 도착할 때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브랜드의 태도가 일관되어야 살아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콘래드서울의 서비스 강점으로 ‘호흡형 응대’를 강조했다. 고객의 첫 방문 시에는 설문으로 알러지, 취향, 선호 메뉴 등을 파악하고 재방문 시에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영 인사부터 객실 어메니티, 다이닝까지 모두 개인화한다고 한다. 또 고객이 객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1:1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직접 직원이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콘래드서울은 ‘펄스8(Pulse8)’이라는 대형 웰니스 클럽을 운영하며 수영장·헬스장·필라테스·스파 등 다양한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이를 단순 시설이 아닌 ‘재정비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고객이 자신의 루틴을 회복하거나 휴식을 통해 다시 충전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웰니스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F&B 전략도 콘래드만의 색을 입힐 계획이다. 힐튼방콕, 콘래드도쿄에서 미쉐린 셰프와 협업해 외식 브랜드를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콘래드서울에서도 차별화된 다이닝 기획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로컬 파트너와 협의 중이며 미쉐린 셰프 초청, 셰프 테이블, 이전 콘래드서울에서 진행했던 잔망루피 딸기뷔페와 같은 팝컬처 접목 등 유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식음 경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래드서울이 앞으로 추구할 브랜드 방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출장객에게는 제2의 집처럼, 레저 고객에게는 지역을 만나는 창처럼 모두의 목적에 맞는 호텔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호텔은 고객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목적과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라면서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인 콘래드 서울의 출발점에서 콘래드서울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그려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호텔의 한계를 넘는 브랜드 기획력, 고객을 움직이게 하는 경험 설계, 그리고 내부의 작은 목소리까지 이끌어내는 공감형 리더십. 사무엘 피터 총지배인이 가진 역량은 고급 호텔의 역할이 다시 쓰이고 있는 현재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여의도라는 도심 속 복합 거점에서 콘래드서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있는 호텔’의 기준을 새로 써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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