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美 퓨리서치센터 주요 17개국 조사 결과… 한국만 ‘가족’ 아닌 ‘돈’ 택해
곽노성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객원교수의 신간 ‘침몰하는 한국, 생존을 위한 선택’을 읽다가 충격적인 표를 발견했다. 세계 주요 17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가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표’와 같았다.
자본주의 탄생지 영국도 가족 꼽는데… 조사 대상 17개국 가운데 14개국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족’을 꼽았다. 3개 나라만 응답이 달랐다.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만에서 사회·제도가 1위인 건 좀 의아하지만, 이 조사가 이뤄진 게 2021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 정책이 이슈였다. 중국과의 통일 이슈가 있는 대만에서는 사회·제도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던 시기다. 어쨌든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건 한국이다. 한국은 물질적 풍요, 바꿔 말하면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돈만 중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 표를 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갖췄다고 해서 모두가 돈을 최우선으로 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돈이 아닌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잘 발달했으며, 피도 눈물도 없는 금융 제국을 만들어 운용 중인 미국조차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왜 한국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을까.
조사 보고서 원본을 찾아봤다. 이 조사는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진행한 것으로,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발달한 17개국을 선정한 뒤 인구가 많은 미국은 약 2600명, 다른 나라는 각 약 1000명, 즉 1만8850여 명을 표본으로 해서 나온 결과다. 보고서명은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가? 17개 선진 경제국의 관점’(What Makes Life Meaningful? Views From 17 Advanced Economics)이다.
이때 조사는 객관식 질문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관식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뒤 결과 단계에서 사람들의 답변을 모아 범주화했다. 또 응답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만 답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인생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게 여러 개라면 그것을 다 말해도 됐다.
보고서에서 한국은 참 특별한 존재였다. 한국은 17개국 중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유일한 국가인데, 그 점 말고도 다른 나라들과 차이 나는 지점이 많았다. 우선 한국인은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직 하나만 답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말했다시피 이 조사는 객관식이 아니었고, 하나만 답해야 한다고 제한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 나라에서는 복수 응답이 많이 나왔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그런데 한국인은 하나만 말한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62%의 사람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하나를 꼽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나만 고른 비율이 약 30%였다.
한국인, ‘돈 중요’ 단일 응답 비율 높아
가족도 돈도 친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가족이나 친구를 포기하고 돈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면 가족이나 친구를 포기하고 돈을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똑같이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것들도 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돈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다르다. 한국인은 오로지 하나만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내가 보기에 이게 가장 우려스러운 한국인의 성향이다.
두 번째 특이점은 한국이 물질적 부,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절대적으로 돈을 더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19%였다. 스페인은 42%였고, 네덜란드는 33%였다. 19% 비율은 전체 국가의 중간 정도 수준이었다. 스페인은 돈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42%이기는 하지만, 건강이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그보다 더 많았다. 네덜란드도 돈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33%이지만 가족이 중요하다고 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들 국가에서는 돈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1위가 됐다. 하지만 한국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19%였는데, 다른 것들이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모두 이에 못 미쳤다. 다른 나라에서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의 평균이 38%였고 그래서 가족이 1위를 차지했지만, 한국에서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한 비율이 16%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사람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았다. 19%밖에 안 되는 소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선호되는 게 돈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이 정도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소수지만 가장 선호된다는 것, 이게 한국이 가진 돈 관련 문제의 원천일 테다.
세 번째로 내가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이건 진짜 곤란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돈이 1위라는 것,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가족을 꼽을 때 한국만 돈을 선택한 것도 문제이기는 한데, 이보다 한국이 가진 문제점을 더 정확히 알려주는 건 한국에서 낮은 순위를 차지한 여러 요소였다.
사랑하는 사람·취미·봉사·일 모두 꼴찌
한국이 17개국 가운데 꼴찌로 응답한 요소는 굉장히 많다.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상대(romantic partner)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꼴찌를 기록했다. 친구와 동료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중도 꼴찌였다. 개인적인 취미라고 응답한 비율도, 여행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17개국 중 17위였다. 배움(learning), 봉사활동, 반려동물 등을 꼽은 비율도 마찬가지로 17위였다.
꼴찌를 기록한 요소 가운데 가장 아쉬운 건 일(work)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직업·커리어가 굉장히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평균적으로 볼 때 1위는 가족이었고, 일·직업이 2위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직업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한국은 인생에서 일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단 6%였다.
꼴찌는 아니지만 꼴찌에서 두 번째인 것도 몇 개 있었다. 자연 및 야외활동(nature and the outdoors)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끝에서 두 번째였고, 종교·정신적 영성이 중요하다는 응답도 뒤에서 두 번째였다. 가족도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한국에서 가족이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16%였는데, 전 세계 평균은 38%였다. 가족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대만으로 15%였다. 끝에서 3위는 26%인 일본이었다. 한국은 대만보다 1%p 높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동 꼴찌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많은 한국인이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가족, 친구, 동료, 일, 환경, 배움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이런 조사에서 돈이 1위로 나오고, 다른 것들은 세계 꼴찌 수준을 기록한 이유가 뭘까. 이건 자본주의나 현대 황금만능주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돈도 중요하다”는 것이지, “돈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돈이 최고 가치를 가진 건 한국뿐이었다. 한국 현실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지 않을까 싶다.
최성락 박사는…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