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中企 해외 진출, ‘경쟁자와의 협력’이 안전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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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추구-위험 감수 지나치면
오히려 성과 저해할 수 있어
역량에 맞는 전략적 균형 필요

2000년대 초반까지 소니와 삼성은 TV, 오디오, 반도체 등 전자제품 전반에 걸쳐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특허 분쟁이나 기술 유출 논란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2004년 두 기업은 뜻밖에 손을 잡고 LCD 합작사 ‘S-LCD’를 설립했다. 이처럼 경쟁자 간 전략적 협력, 즉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은 오늘날 기업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활용하는 주요 전략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자원이 제한적인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 시장 진출 과정에서 경쟁자와 협력해 진입 장벽을 낮추거나 현지 시장 정보를 공유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시장을 노리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문화적 차이, 규제, 운영 환경의 복잡성 등으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마케팅 전략과 기업가정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실제 조직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효과를 봤던 마케팅 전략이 해외 시장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 만큼 해외 진출 시에는 ‘기업가적 마케팅 지향성(Entrepreneurial Marketing Orientation·EMO)’과 기업 성과 간의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EMO란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마케팅적 사고방식이다. 혁신, 위험 감수, 자원의 유연한 활용, 고객 중심 사고 등이 이 개념의 핵심 요소다.

영국 레스터대, 캐나다 오타와대, 이탈리아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 공동 연구진은 EMO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되레 성과가 하락하는 ‘역U자형’ 구조인지, 경쟁자와의 전략적 협력이 이런 관계를 긍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했다. 와인 산업에 종사하는 28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EMO가 해외 진출 초기에는 기업 성과를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성과가 하락하는 전환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치게 강한 EMO는 과도한 정보 수집, 무리한 선제 대응, 성급한 시장 진입 등으로 이어져 자원 낭비와 전략적 판단 오류를 유발할 수 있었다.

또한 경쟁자와의 전략적 협력은 이런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협력을 통해 기업은 부족한 시장 정보를 보완하고 과도한 모험을 줄이며 차별화 전략이 현실과 괴리되지 않도록 점검할 수 있었다. 정보 공유, 공동 마케팅, 공급망 연계와 같은 협력 활동이 해외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연구는 혁신을 추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가 성과 향상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이런 지향성이 지나칠 경우 오히려 성과를 저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시장에 너무 빠르게 진입하거나 불확실성이 큰 전략에 과감히 투자하는 경우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의 역량과 시장 상황에 맞는 전략적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해외 진출#전략적 협력#협력적 경쟁#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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