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확산되는 캐릭터 기반 굿즈 소비트렌드
못생긴 인형 ‘라부부’ SNS 달궈… 올리브영-산리오 협업 제품은 출시 하루만에 일부 제품 품절
MZ세대, 한정판 제품 구매하며 정체성 표현하고 성취감 느껴…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식품부터 패션-스포츠 분야까지… 영역 넘나드는 협업 굿즈 활발, 고객 충성도-팬덤 형성에 기여
《젊은 세대 ‘작은 사치’… 한정판 굿즈 열풍
최근 젊은 세대들은 감정적 만족과 취향 표현을 중시하며 ‘한정판 굿즈’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기업들은 희소성과 소장 가치를 높인 굿즈를 선보이기 위해 영역을 넘나들며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리셀가의 주인공은 중국의 완구 업체 팝마트가 만든 ‘라부부’ 인형이다. 뾰족한 이빨 9개가 달린 작은 요정을 콘셉트로 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캐릭터 인형이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중고 거래가도 적게는 판매가의 5배에서 많게는 50배까지 치솟았다. 걸그룹 블랙핑크 리사와 로제, 가수 이영지, 팝스타 리애나까지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명품 가방에 라부부 인형을 장식하거나 구매를 인증하는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인기에 불을 지폈다. 이 독특하고 못생긴 인형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오픈런’을 하거나 ‘웃돈’을 주고 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판매사인 팝마트의 올해 상반기(1∼6월) 매출은 전년 대비 20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굿즈 열풍으로 오픈런에 웃돈까지
라부부 열풍은 ‘굿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MZ세대 소비 트렌드를 보여준다. 최근 20, 30대를 중심으로 한정판 굿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행태가 두드러지고 있다. 가격이나 실용성보다 감정적 만족과 취향 표현을 중시하는 ‘감성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한정판’, ‘기간 한정’, ‘랜덤 구성’ 등 희소성과 소장 가치를 높인 아이템들을 선보이며 굿즈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올리브영이 이달부터 인기 캐릭터 ‘산리오’와 손잡고 선보인 협업 제품들은 출시 하루 만에 인기 품목들이 품절됐다. 올리브영은 이달 1일부터 32개 브랜드 210개 상품을 대상으로 산리오캐릭터즈와 함께 협업에 나섰다. 여름철을 맞아 헬로키티, 마이멜로디, 폼폼푸린 등 산리오 대표 캐릭터를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태닝 에디션’으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산리오와의 협업으로 올해 7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증가했다.
이디야커피가 산리오와 선보인 여름 한정 협업 메뉴도 출시 직후부터 하루 평균 1만 잔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한정 메뉴와 함께 선보인 피규어 마그넷과 파우치 키링 콜드컵 굿즈들은 일부 매장에서 하루 만에 품절되기도 했다. CU는 지난달에 인기 이모티콘 캐릭터 ‘가나디’와 협업해 뚜껑에 고리가 달려 키링으로 만들 수 있는 한정판 ‘가나디 바나나우유’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출시 이틀 만에 3만 개가 팔리며 전국 매장에서 조기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증정품을 갖기 위해 물건을 구매하는 일도 흔한 풍경이 됐다. 올리브영에서 7만 원 이상 구매 시 증정하는 비치타올 등 한정판 산리오캐릭터즈 굿즈는 전국 매장에서 1∼3차 모두 당일 소진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한정판 사은품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올리브영 매장에서 산리오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사러 온 대학생 이모 씨(23)는 “헬로키티 키링과 비치타월을 갖고 싶어서 첫날 달려와서 득템했다”면서 “계속 선보이는 제품이 아니라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에서 매년 여름과 겨울에 진행하는 스타벅스 ‘e-프리퀀시’ 증정품 이벤트는 해마다 치열한 예약전쟁을 벌여야 한다. 인기 품목들은 빠른 시일 내에 품절되다 보니 일부 소비자들은 원하는 증정품을 사기 위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굿즈를 사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 스타벅스가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와 손잡고 선보인 ‘스타벅스 라코스테 멀티플백’ 가방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6만∼7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MZ세대가 굿즈 소비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배경에는 ‘감정적 만족’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나 나를 만족시키는가’, ‘나만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가’가 소비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굿즈 열풍은 MZ세대의 ‘작은 사치’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고물가와 경기 불황 속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소비 방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정가 2만∼3만 원 수준의 피규어지만 한정판과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득템’ 자체가 하나의 위로이자 자존감 회복 수단이 된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MZ세대는 자기 자신을 꾸미고 드러내는 데 익숙한 세대로, 가방이나 모자 등에 캐릭터 굿즈를 부착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며 “특히 블라인드 박스처럼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제품을 구매하거나 한정판을 위해 줄을 서는 행위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성취감과 재미를 주는 놀이적 경험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MZ세대 사이에서 ‘한정판 굿즈’는 ‘덕질’과 ‘재테크’의 경계를 허문 투자 수단이자 수집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한정판 플랫폼 ‘솔드아웃’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정가 대비 실거래 가격 상승 폭이 가장 큰 상품은 라부부였다. 라부부 시리즈 중 하나인 ‘더 몬스터즈 하이라이트 시리즈 충성 키링’은 공식 발매가가 2만1000원이지만 6월 중순 기준으로 16만3000원에 거래됐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에서도 라부부 6월 거래액은 전월 대비 121% 급증했다. 올해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경매에서는 한정판 라부부 인형이 15만 달러(약 2억535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한정판 캐릭터와 브랜드 굿즈 수집 열풍이 이어지면서 중고시장에서는 개개인의 취향과 가치가 반영된 물품 거래가 활발하다. 중고나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취미·취향 관련 카테고리의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226%, 거래 건수는 87% 증가했다. 중고나라가 취미 관련 카테고리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거래액이 가장 급성장한 카테고리는 만화책(572%)이었고 키덜트(524%), 야구의류·굿즈(406%), 스타굿즈(278%)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키덜트와 스타굿즈 카테고리는 거래액뿐 아니라 거래량에서도 증가세가 가팔랐다. 피규어, 플라모델, 레고 등 키덜트 관련 상품의 거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9%, 스타굿즈 상품의 거래 건수는 364% 급증했다. 감성·팬덤 중심의 소비 트렌드가 강화되면서 희소성과 리셀 가치가 높은 ‘수집형’ 취미 품목에 거래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식품부터 스포츠까지 영역 넘나드는 협업
한정판 굿즈에 대한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최근에는 식품·뷰티뿐 아니라 패션·스포츠까지 다양한 브랜드가 영역을 넘나들며 협업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은 5월 글로벌 인기 애니메이션 ‘스폰지밥’과 협업해 티셔츠, 재킷, 모자, 물병 등 한정판 컬렉션을 공개했다.
야구 팬덤이 1020 여성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프로야구단들은 굿즈 라인업을 과감하게 다변화하고 있다. 과거 유니폼이나 모자 중심의 실용 굿즈에서 벗어나 마스코트 인형, 피규어, 키링, 응원봉, 포토카드, 랜덤 박스 등 아이돌 팬덤과 유사한 ‘덕질형 수집템’으로 진화됐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협업해 ‘레시 굿즈’를 지난해부터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시즌 1 당시 온라인에서 출시 즉시 완판되는 인기를 얻고 올해 시즌 2는 굿즈 종류를 4배로 늘리고 참여 구단도 9개로 늘렸다. 지난달 23일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판매량이 6만 개를 돌파했다. KBO 두산베어스와 치킨 브랜드 bhc는 협업해 서울 잠실 야구장 내 bhc 매장에서 ‘한정판 콜팝컵’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굿즈는 단기 매출보다 소비자 충성도와 팬덤 형성에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며 “단순한 ‘귀여움’이 아닌, 브랜드와 소비자의 정서적 교감을 이끄는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정판 캐릭터 상품에 열광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 트렌드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가치 중심 소비가 자리를 잡으면서 단순 유행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한정판 상품에 수요가 몰리는 것도 희소하고 특별하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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