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中매출 15% 美정부로” 트럼프, 자국기업에도 돈 뜯기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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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2라운드] FT “美, AI칩 대중 수출 허가 조건”
AMD도 中판매액의 15% 지불 합의
美정부 최소 2.8조원 수익 거둘 듯
“수출 대가 정부에 지불 전례없어”… “돈 내면 전투기도 中수출되나” 지적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오른쪽)가 올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대미 투자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에 저사양 반도체 수출 재개를 허가받는 조건으로 대중(對中)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기로 했다. 두 회사가 미국 정부에 내는 ‘수출 통행세’만 최소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저사양 인공지능(AI) 칩인 엔비디아 ‘H20’의 중국 수출 재개는 H20 제조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를 납품하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는 일단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다만 매출의 15%를 정부에 납부해야 하는 조건이라, 향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납품단가 인하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NYT “美 정부 최소 20억 달러 수익”

11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반도체 H20, AMD는 MI308(중국 수출용 저사양 AI칩)에 대한 중국 수출을 재개하는 대신 각 품목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FT는 “미국 기업이 수출 허가를 받기 위해 수익 일부를 정부에 지불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미국 정부가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와 AMD로부터 최소 20억 달러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엔비디아의 올해 H20 매출액 예상치를 뉴욕타임스는 150억 달러, FT는 230억 달러로 내다봤다. 이 수치에 15%를 적용하면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에서만 22억5000만∼34억5000만 달러를 받게 된다.

미국은 올 4월 H20과 MI308을 대중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당시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는 시점에서 미국의 최신형 반도체가 중국의 AI 산업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엔비디아는 꾸준히 “저사양 반도체를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과 이달 6일 거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수출 재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는 8일 H20과 MI308의 대중 수출을 허용했다.

● 이익 되면 자국 기업도 쥐어짜는 트럼프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와 AMD의 중국향 AI 칩 수출 재개가 양사에 고성능 메모리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단기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업체들의 H20 주문이 재개되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수요가 동반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H20에 쓰이는 고성능 메모리를 한국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중국 수출 재개는 물량 증가로 이어져 유리하다”면서도 “다만 엔비디아와 AMD가 매출의 15%를 세금 형태로 내야 하는 만큼, 이를 협력사인 한국 기업에 전가해 고통을 분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 방식을 ‘재확인’시킨 사례로 해석되는 만큼, 대미(對美) 투자 압박을 받는 한국 기업들이 이를 참고해 유연한 대처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자국 기업에 수출 허가를 내주는 대신 돈을 받는 상황은 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 당초 H20의 중국 수출을 막았던 이유인 기술 유출 우려가 해소됐다는 정황도 없다. 그런데도 H20 수출을 허가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통행세’를 받기 위해 수출 제한 조치를 ‘협상 카드’로 활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근무했던 중국 전문가 리자 토빈은 “중국은 미국 정부가 수출 허가로 수익을 창출한 것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제 록히드마틴도 중국에 전투기를 팔고 15% 수수료를 내면 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는 “트럼프식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지키려면 현지 생산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관세와 시장 규모 변화에 맞춰 글로벌 생산 설비를 재배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미국#엔비디아#반도체#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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