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미국에서는 개인 퇴직연금 계좌에 가상자산 투자도 허용하는 등 가상자산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 기금이나 글로벌 대기업들까지 가상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존 가상자산은 일부 투자자만 관심을 두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금융권과 제도권에서도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이 시장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면 좋을까.
이한재 신한프리미어 패밀리오피스 반포센터 PB 팀장A. 가장 먼저 눈여겨볼 부분은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말 그대로 가치가 ‘안정된(Stable)’ 코인이다. 보통 달러와 일대일로 연동돼 발행되며, 실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투자자들과 교환한 달러를 기반으로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매입한다. 여기서 생기는 이자 수익이 발행사의 주요 수익원이다. 단순히 코인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달러 유입과 국채 수요를 연결하는 금융 인프라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적극적으로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음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이 오랫동안 인플레이션 시대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아 왔다면,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란 별칭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돼 희소성이 뚜렷하고, 연기금이나 대형 기관이 매수에 나서면 시장 유동성이 확대되며 가격 상승 기대도 커진다. 일부 기업은 회사 자금을 활용해 비트코인을 꾸준히 매입하며 일종의 ‘디지털 금고’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큰 자산이기에, 비트코인 보유 규모에 비해 기업 가치가 과도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가상자산의 ‘생태계 확장성’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스마트 계약을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스테이블코인 거래나 탈중앙화 금융(DeFi)의 기반 기술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될수록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가치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되는 최근 흐름 속에 네트워크 인프라를 제공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구축한 기업은 물론이고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같은 서비스 기업 역시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게 된다.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우선 거래소를 통해 직접 가상자산을 매수하는 방법이 있지만 보관을 잘못해 분실하거나 해킹당할 위험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해외에서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와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투자할 길이 열려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이러한 상품 투자에 제한이 있다. 그 대신 국내 일부 액티브 ETF 상품은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기업,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기업, 거래소를 운영하는 기업 등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직접 매수부터 ETF를 통한 간접 노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자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단순한 ‘투기’란 틀에 갇히지 않는다. 달러와 국채를 연결하며 금융 인프라로서 입지를 넓히고, 희소성을 기반으로 가치 저장 수단의 위상을 굳혀가며 미래 디지털 경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아직 제도와 환경은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지만, 가상자산을 볼 때 단순히 가격 등락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여러 의미와 논리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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