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구
실크업체서 부동산 개발사 변신… 2007년 하와이에 콘도 부지 매입
용적률 등 난관 뚫고 1, 2차 완판
홈쇼핑 매각 후 복지재단 설립… 매년 독거노인-학생에 5억 지원
창업주 “사회에 환원” 철학 실천
삼구는 하와이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콘도미니엄 개발을 위한 부지 2곳을 매입했다. 위쪽 사진 하와이 1차 사업부지 및 콘도(카피올라니 레지던스 3)와 2차 사업부지 및 콘도(더센트럴 알라모아나 2). 삼구 제공
서울 용산구 청파로. 이곳에 자리한 삼구빌딩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 기업가정신의 DNA가 이어져 오고 있다. 1971년 작은 실크 의류업체로 시작한 ㈜삼구가 오늘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부동산 개발의 새 지평을 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창업주 고(故) 박종구 회장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사위인 현 김상문 대표의 경영 철학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다.
실크에서부터 시작된 글로벌 꿈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위치한 삼구빌딩1971년 달성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뗀 삼구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 경제 발전사의 축소판이다. 실크 의류업으로 시작한 회사는 1975년 ㈜삼구통상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뉴욕지사를 설립, 일찍이 글로벌 시장을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1986년에는 도미니카에 현지 의류 제조 공장을 설립하며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창업주 박 회장의 경영 철학은 명확했다. “기업은 신의로 경영하고 이익을 내는 경영을 해야 하며 그 이익은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는 신념 아래 가치 창조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1991년 준공된 삼구빌딩은 박 회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적 공간이다.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고급 자재로 건물 내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재투자를 통해 입주 기업들과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중장기 혁신과 사회 공헌의 발자취
1995년 ㈜삼구로 상호를 변경한 회사는 같은 해 삼구홈쇼핑을 개국하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미디어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장인인 박 회장을 회고하며 “추진력이 남다르셨다. 섬유든 홈쇼핑 사업이든 크게 성공했음에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셨다”고 말한다.
2000년 삼구홈쇼핑을 CJ에 매각한 것 역시 시장 변화를 정확히 읽은 전략적 판단이었다. 같은 해 설립된 삼구복지재단은 박 회장의 사회 환원 철학을 구현한 결실이다. 100억 원의 출연 기금으로 설립된 재단은 현재까지도 매년 5억 원을 홀몸 노인 지원과 고등학생, 대학생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120억 원을 기부해 ‘우당교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영구히 그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
태평양을 건넌 원대한 비전
삼구의 변곡점은 2007년 하와이 진출과 함께 시작됐다. 박종구 회장의 의지로 하와이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콘도미니엄 개발을 위한 부지 2곳을 매입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매입한 부지의 용적률과 고도 제한으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개발 사업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08년 취임한 김 대표는 이 난관을 창의적 해법으로 돌파했다. 현대자동차, 현대산업개발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와이주택금융개발공사의 관리하에 하와이 201H법에 의거한 ‘어포더블 하우징’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는 AMI(지역 중위 소득)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중산·서민층에게 분양 자격을 부여하는 하와이주의 사회 주택 프로그램으로 용적률을 1000%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과 위기, 미래를 향한 도전과 성공
하와이주택재정공사와 호놀룰루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진행된 1차 사업 ‘카피올라니 레지던스’는 45층, 총 485세대 규모로 2015년에 인허가를 받고 2018년 성공적으로 준공됐다. 전체 분양 세대의 60%(292세대)를 중산·서민층에게 공급함으로써 현지 협력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2차 사업 ‘더센트럴 알라모아나’는 1750평(약 5785㎡) 부지에 43층, 총 513세대 규모로 2021년 완공됐다. 1, 2차 사업 모두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높은 경쟁률로 완판됐다. 미국식 실내 설계 대신 과감히 한국식 특화 평면을 적용했고 고품질의 삼성 가전, 한샘 가구를 선보여 반응이 뜨거웠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20년 전 세계적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무리 없이 진행됐으나 PF 인출 선행 조건 부적합으로 사업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국민은행과 약정한 1억3000만 달러(약 1804억 원) 중 9000만 달러(약 1249억 원)가 약속된 날짜에 인출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입주자들과 관계없는 내용 변경을 계약서상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주 측 현지 변호사가 이슈화하면서 은행이 인출을 막아버렸다.
당장 공사가 진행돼야 하는 상황에서 김 대표는 평소 쌓아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효성家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이 3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고, 고교 선후배 사이인 당시 신영증권 부사장을 통해 6000만 달러까지 투자 승인을 받았다. 통상 최소 3개월 걸리는 검토 과정이 기적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결국 국민은행에서 재심의를 제안하며 사태는 원만히 해결됐다.
이 경험을 통해 김 대표는 “평소에 신의와 신뢰를 지키며 경영하면서 위기가 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안 될 것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하와이에 1000억 원 이상 규모의 현금자산 동원 가능액을 보유한 삼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 폭등과 자재비 상승, 특히 현지 인건비 상승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로컬 사업이라 할지라도 부동산 개발이라는 것은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여러 투자 제안이 들어왔지만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경영자로서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현대차, 현대산업개발에서의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과 최대한 많은 소통을 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직원들을 회사 성장과 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인정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반세기 전 작은 실크 의류업체로 시작한 기업이 이제는 태평양을 무대로 하는 글로벌 부동산 개발업체로 거듭난 것이다.
김 대표는 “하와이의 어포더블 하우징 같은 모델이 국내에도 도입돼 서민의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창업주 박종구 회장의 철학을 이어받아 ‘당장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모두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상생 경영’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와이 부동산 성공, 경험-직감-용기가 만든 합작품”
[인터뷰] 김상문 삼구 대표
해외 경험, 사업 운영 노하우와 탁월한 시장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삼구의 수장이 된 김상문 대표.2008년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에서 쌓아온 해외 경험, 사업 운영 노하우와 탁월한 시장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삼구의 수장이 된 김상문 대표(고려대 서어서문학과 83). 그 앞에는 태평양 건너편 하와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펼쳐질 전례 없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 당시 삼구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섬유업과 홈쇼핑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한 시점이었죠.” 김 대표의 회상에는 당시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현대그룹에서 축적한 해외 주재원 및 건설업 경험이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었다.
하와이 진출 초기 가장 큰 난관은 현지의 까다로운 개발 규제였다. 일반적인 방식으론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 대표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지역 중위 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중산·서민층을 위한 어포더블 하우징 프로젝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성공의 열쇠가 됐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김 대표는 또 다른 시련을 맞았다. “대면 미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중요한 투자 제안과 결정들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평소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요.”
성공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김 대표는 자신만의 경영 철학을 들려준다. “삼구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과 장기적 관점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상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인터뷰 말미에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후배 경영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해외에서는 현지화가 생존의 조건입니다. 철저한 준비와 현지 파트너들과의 진정한 협력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죠.” 태평양을 교두보로 삼은 그의 경험담에는 도전과 성취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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