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 목적 아닌 투자용으로 구입
내국인보다 중고가 갭투자 10%P 높아
대출 등 차입금 100% 구매도 37건
“집값 부추겨 서민주거 악영향 우려”
지난해 서울 성동구에서 한 미국인이 대출과 임대보증금으로 자기 돈 한 푼 없이 12억 원 넘는 아파트를 매입했다. 주택 가격의 53.1%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전액은 임대 보증금으로 조달했다. 본인이 실제 거주하지 않고 임대를 주며 ‘남의 돈’ 100%로 국내 주택을 사들인 것이다.
최근 3년간 외국인이 국내에 6억 원 이상 주택을 매입하기 위해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의 30%가량이 갭투자로 나타났다. 거주 목적이 아니라 투자용으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고가 주택을 비롯해 중저가 주택에서도 외국인의 갭투자 비중이 내국인에 비해 높게 나타나며 서민 주거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확보한 외국인 자금조달계획서 등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계약한 2005건 중 591건(29.5%)이 입주계획에 ‘임대’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억 원 이상 고가 주택의 경우 자금조달계획서 700건 중 231건(33%)이 전월세를 주겠다고 밝혔다. 외국인이 국내 주택을 매입할 때 주택 가격이 6억 원 이상이거나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은 모두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갭투자 비중이 가장 큰 주택 가격대는 9억 원 초과∼12억 원 이하 주택이었다. 올해 자금조달계획서가 제출된 거래 중 38.4%가 임대를 주겠다고 답했다. 같은 가격대의 내외국인 전체 갭투자 비중이 29.9%인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외국인이 중산층 수요가 많은 중고가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주택 매매를 위해 대출, 임대보증금 등을 70% 넘게 끌어온 비중도 최근 3년간 17.4%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대출금 등 차입금 100%로 구매한 주택은 37건이었다. 내국인의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집값의 70%로 제한되고, 여기에는 전세보증금도 포함된다.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 집값 대비 더 많은 빚을 내서 집을 매입했다는 의미다.
● 15억 원 이상 아파트 매매 증가 추세
외국인의 주택 거래량 자체도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의 6억 원 이상 주택 구입에 따른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건수는 2023년 615건, 지난해 843건으로 늘어났고, 올해 7월까지는 547건이 제출됐다. 이 중 15억 원 이상 고가 주택 구입은 2023년 120건에서 지난해 227건으로 늘었고, 올해 7월까지 170건이 제출돼 이미 2023년 한 해 건수를 넘어섰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외국인이 주로 매매하던 한강벨트 집값이 많이 올랐고, 재개발·재건축을 마친 신축 아파트를 구입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라며 “한국 부동산 가격이 점차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투자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달 25일부터 국토부가 서울과 경기·인천 대부분의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실거주 의무를 부여해 이 같은 증가세는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다. 신 의원은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부터 외국인 투기성 부동산 거래 제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시행되지 못하는 사이 외국인 주택 보유 수가 크게 늘었다”며 “외국인이 불법적 투기 거래로 집값을 끌어올려 서민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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