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상반기 테스트 방침
부정수급 막고 비용 절감 효과도
은행들 이미 인프라 구축 긍정적
온누리상품권 등 확대 가능성
정부가 내년 상반기(1∼6월) 중 일부 국고보조금을 현금, 바우처 대신 ‘디지털 화폐’로 지급하는 실험에 나선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로 보조금 부정 수급을 막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르면 이달 중 ‘국고보조금 디지털 화폐 테스트’ 설명회를 열고 은행권과 향후 일정, 세부 내용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최근까지 한은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테스트 참석 여부를 조사했다. 정부 측은 이듬해 상반기 내로 테스트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의 핵심은 국고보조금이나 바우처(정부 지급보증 쿠폰)를 디지털 화폐 형태로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이 디지털 화폐는 한은의 디지털 장부인 블록체인상에서 시중은행이 발행하며, 보조금은 수급자의 전자지갑(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송금된다. 다만 국고보조금과 관련된 수급자, 사업자 간에만 거래할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해 보조금의 오남용을 막길 기대하고 있다. 한은이 블록체인에서 디지털 화폐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보조금 부당 사용·지급 효과, 거래·행정 비용 절감 등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고보조금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나면서 부정 수급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국고보조금은 112조3000억 원으로 전년(109조1000억 원) 대비 약 2.9%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당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수령한 건수도 630건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많았다.
은행들도 이번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분위기다. 국고보조금이 100조 원 규모를 상회하는 데다 한은이 4∼6월 진행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1차 테스트에 참여한 바 있어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둔 덕분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의 1차 테스트 때 투입한 인프라와 비용을 활용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국고보조금 테스트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향후 온누리상품권, 지역화폐 등도 디지털 화폐로 대체될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사와의 협력도 모색하는 분위기다. 이날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서울 중구 본사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점유율 1위 업체인 테더(USDT)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지난달 22일 2위 업체인 서클(USDC)의 히스 타버트 사장을 만난 데 이어 테더와의 네트워크도 구축하게 됐다. 신한금융뿐 아니라 KB·하나·우리 등도 지난달부터 방한한 테더, 서클 관계자들을 연이어 만나고 있다.
금융지주들이 스테이블코인 회사와의 중장기적인 협업을 고려하는 것은 디지털 화폐 생태계가 금융사에 위협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진 회장은 “플랫폼 기업과 디지털 화폐의 확산으로 은행 예금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관련 생태계 기술 맵(지도)이 현재 부재한 상태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기술의 내재화와 이해도 확산”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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