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첫 주택 공급대책을 놓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LH의 고질적인 적자와 인력 조정 등의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H는 이미 지난해 말 160조 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고 있고, 직원 수는 9600명에 이르는 ‘매머드 공기업’이다. 여기에 정부 대책대로 직접 시행을 맡는 사업장이 늘어나면 인력 충원 및 재조정, 추가 자금 투입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LH 주도 주택 공급이 자칫 주택의 질적 저하나 LH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LH의 ‘2025∼202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부채는 170조1817억 원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는 192조4593억 원, 2027년 219조5311억 원 등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채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임대 주택이다. 저소득층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하다 보면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주택용지를 민간에 매각해 적자를 보전해 왔는데, 이번 대책에는 이런 ‘땅장사’를 금지하는 대신 주택 공급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안이 빠졌다.
일각에서는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이를 충당하는 방식이 거론되는데, 결국 그만큼 채무는 늘어나게 된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LH가 공급하면 분양가가 저렴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추가 예산 투입이나 채권 발행 등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인력 구조 개편도 필요하다. 시행 업무가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고 중복 사업 효율화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LH는 96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는데, 이들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LH가 수도권과 도심 등에 조성할 주택용지가 많지 않을 경우 과도한 고밀화 우려도 제기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LH에 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인데, 신도시를 무작정 고밀 개발하면 자족도시가 아닌 베드타운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공공 주도로 주거 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민간 건설사가 시공에 활발히 참여하기 위해서는 적정 공사비 책정이 필요한데, LH가 이를 감당할 수 있냐란 의문도 제기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민간 분양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LH가 공사비를 적정하게 책정하느냐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의 주택 공급이 경기에 따라 편차가 큰 만큼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공 주도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LH가 분양한 공공택지 116만3244㎡가 계약 해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으로는 인천 영종, 경기 파주 운정, 화성 동탄, 양주 회천 등 45개 필지였다. 건설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분양금을 내지 못하거나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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