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추석 민생안정대책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5.9.15/뉴스1
이재명 대통령에 이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금융기관의 ‘금리 역설’을 지적했다. 지적의 핵심은 ‘저소득자에 왜 대출금리를 높게 책정하냐’는 것이다.
당정이 연달아 금융회사의 대출금리를 지적하자 금융권에선 ‘금융의 기본 원칙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돈을 빌려준 금융사 입장에선 대출금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데, 저소득자·저신용자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저신용자에 고금리는 역설”
16일 김병기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의 금융 구조는 역설적이다. 저신용, 저소득일수록 높은 금리를 부담하고 고신용, 고소득 계층은 낮은 금리를 누리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금융 이익이 사회의 공정한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도 이달 9일 국무회의에서 “경제 논리로 보면 이해는 가지만, 고신용자는 저(낮은)이자로, 고액을 장기로 빌려주고 저신용자는 고리(높은 금리)로 소액을 단기로 빌려준다”며 “돈 필요 없는 사람에게 저리로 빌려줘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우대 고객한테 한 0.1% 정도만이라도 부담을 더 시켜 그중 일부를 금융기관 접근이 어려운 이들에게 싸게 빌려주고 하면 안되나”라며 “금융시스템이라는 게 개인 기업이 기술 개발해서, 경영혁신해서 돈 버는 게 아니고 화폐 발행 권한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당정의 이런 발언에 금융권에선 진보 정권 때마다 나오는 ‘금융시장 때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는 ‘금융혁신’을 추진하기로 하고 담보대출 위주의 ‘전당포식’ 영업을 지적했다. 금융위는 금융기관 수익을 사회에 일정 수준 환원해야 한다며 이른바 ‘포용적 금융’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 적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얼음장처럼 차갑다”며 “그동안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이뤄졌던 금융권 적폐를 적극적으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최후 보루 금융 건전성
12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ATM 지점 안으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2회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후 은행권 예·적금 금리가 하락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상품별 금리를 0.2~0.4%포인트 인하 했다. 2024.12.12 뉴시스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대출을 집행한다. 소득·신용이 높은 사람은 돈을 제때 갚을 능력이 있다고 보고 낮은 금리를, 소득·신용이 낮으면 돈을 떼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 높은 금리를 책정한다. 금융사 입장에서 빌려준 돈의 부실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신용도를 평가하고 대출이자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 관리는 해당 금융사가 얼마나 튼튼한 건전성을 가졌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이는 대손충당금적립률이라는 숫자로 수치화된다. 금융당국은 통상 대손충당금적립률을 150% 안팎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부실이 날 수 있는 대출금액보다 1.5배 더 돈을 쌓아두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사 부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방책이다. 은행 관계자는 “부실 우려가 큰 저신용 차주 대출에는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대출 금리를 더 높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금융사의 건전성 관리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한보그룹의 부도로 국내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며 신용경색이 벌어졌고 은행에 돈을 빌렸던 기업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은행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은행의 건전성 관리는 단순히 은행의 예대마진 수익을 넘어 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며 “정치권에서 지적하는 대출금리는 은행의 건전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의 정책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에 금융권 역할이 커지면서 금융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위가 이달 10일 발표한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에 금융권이 향후 5년간 25조 원 이상을 출자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 대출 곳간인 서민금융진흥원의 은행권 출연요율도 지난해 0.035%에서 올해 0.06%로 올라 연간 2000억 원 이상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권이 일정 수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한국 경제에 기여한 측면보다는 ‘금리 장사를 했다’는 식의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