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에서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는 청년 박영건 씨(30)는 올해 고객이 늘었지만 최근 급등한 쌀값 때문에 걱정이 더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막걸리 제조용 쌀을 받기 위해 정미소를 찾았을 때만 해도 한 포대(20kg) 5만 원대였던 쌀값이 불과 한 달새 6000원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정미소 측은 이미 지난해 도정분이 동나 올해 햅쌀을 써야 하는 탓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쌀값이 4주 만에 7% 이상 오르는 등 단기적으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17일 기준 쌀 20kg 소매 가격은 6만3279원이다. 이달 1일 6만 원 선에서 출발한 쌀값은 10일 6만1000원을 돌파한 후 일주일 만에 2000원 넘게 인상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가공용 쌀 3만 t 공급에 이어 이달 초 정부양곡(벼) 2만5000t 추가 수급을 결정했지만 쌀값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높아진 쌀값에 자영업자들은 식당 메뉴를 바꾸거나, 직원 채용을 미루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제주에서 퓨전 음식점을 운영 중인 이모 씨(34)는 최근 급등한 쌀값 때문에 쌀밥이 들어가는 메뉴 대신 면과 빵 등을 곁들이는 대체 메뉴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특등급 쌀 20kg이 지난달까지만 해도 5만 원대였는데 갑자기 6만 원이 넘어 부담이 커졌다”며 “손님들한테 1000∼2000원 더 내라고 할 수도 없고, 당분간 알아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소규모 닭볶음탕집을 운영 중인 김문주 씨(34)는 지난달 직원이 일을 그만뒀지만 물가 부담에 구인을 포기했다. 올여름 닭고기, 고춧가루 등 다른 식재료 값이 이미 10% 오른 상황에서 쌀값마저 치솟자 인건비까지 감내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김 씨는 “한 달 매출이 5000만 원이면 식자재 비용이 그 절반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300만 원 정도 더 나간다”며 “오른 식자재 값이 인건비와 거의 맞먹는 셈”이라고 했다.
● 인위적 시장 격리에 지역 농협도 ‘쌀 부족’
좀처럼 잡히지 않는 쌀값의 원인으로는 지난해 정부의 인위적인 쌀 시장 격리 조치가 꼽히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12만 t 초과된 365만7000t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수확기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쌀 26만2000t을 시장에서 격리했다. 하지만 여름 병충해 등으로 실제 생산량은 358만5000t에 그쳐 올해 유통 단계에서부터 쌀 재고 물량이 부족해진 것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경기 파주시와 강원 횡성군 등에서 지역 농협을 중심으로 쌀이 떨어져 지역 양조장이 공장 가동을 멈추는 단기 ‘셧다운’ 사태도 발생했다.
올해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조생종 쌀 수확이 늦어진 점도 최근 쌀값이 오른 배경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쌀 추가 공급 대책을 발표하는 등 가격 안정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2일 정부양곡 추가 대여 공급 대책을 설명하며 “다음 달 중순부터 햅쌀이 본격적으로 출하돼 쌀 소매가가 안정될 것”이라며 “업체들은 대여한 만큼 햅쌀로 반납해야 하기에 수확기 쌀값에도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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